12년 전 오늘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있었던 날이다.
2011년 1월 삼호주얼리호가 아라비아해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2006년 4월 동원호가 납치된 이래,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8번째 피랍사태였다.
이전 모든 피랍 사태는 몸값 지불로 해결됐다. 그러다보니 한국선박은 소말리아 해적의 주요 타겟이 되었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테러와 타협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피랍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소말리아 해적인 원하는 것은 돈이었다. 몸값을 지불하면 선원들은 풀려날 것이고 정치적 위험성도 적었다.
하지만 몸값 지급은 당장의 미봉책일 뿐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응이었다. 더 많은 피랍을 야기해 더 큰 피해를 낳을 뿐이었다.
▲ 소말리아 해적은 우리 선박을 8차례나 피랍했다
고심 끝에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의 협상은 없으며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지부티항에 정박해 있던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 최영함를 급히 소말리아 해역으로 출항시켰다.
또한 파키스탄 해군에게 요청해 최영함이 도착할 때까지 삼호주얼리호를 추적하도록 했고, 오만 해군으로부터 전 작전기간 동안 경비함도 지원받았다.
미국의 구축함 및 다국적 연합 해군부대 전투기와 해상초계기들과도 협력해 삼호주얼리호의 위치와 이동 상황을 파악했다.
최영함은 2천킬로미터를 전속력으로 항진하여 2011년 1월 18일 삼호주얼리호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따라 잡았다.
이날 마침 소말리아 해적 일부가 몽골선박을 납치하기 위해 삼호주얼리호를 떠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해적인 분리된 상태에서 청해부대는 작전에 돌입했고, 해적은 백기를 내걸고 투항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청해부대가 접근하자 해적들이 기습사격을 하면서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청해부대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작전 전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목숨이 걸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후일 “이 날이 대통령직의 무게를 가장 크게 느꼈을 때”라고 회상했다.
▲ 청해부대가 삼호주얼리호에 오른 뒤 소말리아 해적 진압 작전을 펼치고 있다.
2011년 1월 21일, 현지시간 오전 4시 58분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개시됐다. 청해부대는 해적 13명 가운데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면서 성공적으로 우리 선원들을 구출해 냈다.
이 과정에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도 총상을 입었다. 석해균 선장은 기지를 발휘해 삼호주얼리호의 운항속도를 늦추는 등 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총상 전문가인 아주대 이국종 교수를 현지로 파견하여 석해균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도록 조치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석해균 선장의 병실을 방문해 "석 선장이 건강을 회복해야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해균 선장의 병실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석 선장이 없었다면 아덴만 여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줘서 고맙다”며 “이제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 아덴만 여명 작전이 끝나는 것이다.”고 했다.
석 선장에게 마도로스 복을 선물로 주면서 완쾌되면 꼭 청와대를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2011년 10월 31일 석해균 선장이 청와대를 방문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석 선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