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5월 초까지 서울서 보던 벚꽃들
기후변화 탓에 이미 졌고, 향후 변화 더할 것
미래 준비하는 정치인들 선택해 방책 찾을 때
만물이 활기를 되찾는 봄이다. 우리말에는 한 글자로 된 소중한 단어가 많은데, 물이나 불처럼 삶에 가장 필요한 것부터 봄 혹은 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회갈색의 단조로웠던 겨울 풍광이 봄을 맞아 바탕색을 초록으로 바꾸며 그 위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났다. 자연의 신비다. 김춘수 시인은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고 노래했다. 대지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가 하나의 영혼 그 자체다.
많은 봄꽃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벚꽃인 듯싶다. 잘 알다시피 창경원은 일제가 조선 왕조의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창경궁을 놀이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여기에 벚나무를 대량 식수한 것도 당연히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벚꽃놀이는 서울의 도시문화가 되었고 1940년에 이미 입장객이 10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벚꽃놀이는 우리의 중요한 상춘(賞春) 풍속이다. 일본의 사쿠라에 대한 반감도 물론 있었지만 벚꽃의 화사함으로 새봄을 활기차게 맞는 일은 이제 우리 전통이다. 여름이 되면 영국 국화인 장미를 반기는 일과 다를 것이 없다.
창경원의 벚나무는 1983년에 식민 잔재 청산을 위해 창경궁 복원이 시작되며 모두 제거되었고 그 대신에 소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꾸며진 우리 고궁이 다시 태어났다. 여하튼 그 무렵까지 창경원의 벚꽃 소식은 당연히 신문 사회면에 매년 올랐는데 동아일보에 게재된 내용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복을 맞기 전, “창경원은 요사이가 한창이다. 모두가 고대하는 벚꽃은 나날이 꽃봉오리가 불어 마치 오늘 필까 내일 필까 하며 사람의 간장을 녹이려 든다.” 이는 1920년 4월 12일의 기사 내용이다. 그리고 1935년 같은 날에는 “창경원의 밤 벚꽃은 경성시민에게 내리는 동원령이다.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경찰 임시출장소에는 ‘어린애 찾아가시오’라는 간판이 붙었다”라는 뉴스를 전했다. 북적대는 인파가 저절로 느껴진다.
벚꽃놀이는 광복 후에도 계속되었다. 1960년에는 혁명을 앞둔 무거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첫날 밤 만여 명… 13일 시작된 밤 벚꽃놀이는 이달 말까지 매일 계속되리라”는 소식이 4월 14일에 실렸다. 그리고 1974년 4월 20일에는 “어제 창경원 10만여 인파, 벚꽃이 만개한 고궁은 앞으로 10여 일 동안 상춘 인파를 맞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마지막 소식은 1982년 4월 8일 신문에 실렸는데 “창경원, 벚꽃이 예년보다 빨리 피어 야간 공개를 오는 10일부터 5월 9일까지 한 달간 실시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들을 읽으며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벚꽃 피는 시기가 상당히 빨라졌다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도 서울에서는 4월 중순이 되어서야 꽃망울이 잡히기 시작해 하순에 만개하던 벚꽃이었다. 5월 초까지 볼 수 있던 벚꽃이 올해에는 한 달 앞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실제로 금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일찍 핀 벚꽃… 서울 25일 개화, 역대 두 번째로 빨라”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런 일의 원인은 기후변화다. 한여름에 고작 열흘 정도 나뭇가지나 잎사귀에 붙어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매미들은 계절이 바뀌어 모든 잎이 떨어진 후의 전혀 다른 나무 모습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인류도 지구라는 큰 나무에 잠시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문명의 윤택함을 누리면서 그 폐해는 외면한 채 살고 있으며, 그 탓에 기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구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전 인류를 위해 기후문제 해결에 역할을 해야 하는 선진국이다. 당연히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방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이는 꿈같은 이야기다. 기후보다 훨씬 더 절박한 문제, 즉 13개월이나 연속해서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우리 경제도 관심 밖이다. 외교 및 안보 관련 사안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자기주장만 외치는 여의도 정치인들은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목청껏 울어 대는 한여름 매미와 다를 바 없는 듯싶다.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을 골라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책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