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대하는데 본회의 예고돼
수급 악화되고 세금도 낭비 우려
쌀 수입 반대 실수 반복 말아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핵심 내용은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하거나 수요보다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일 경우 정부의 매입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얼핏 보기에 쌀값 하락을 막고 쌀 농가에 이익이 될 것 같지만, 내막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쌀 전업농 단체에서 성급한 개정안이라며 반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축산단체를 포함한 많은 농업 관련 단체들도 반대하고 있다. 물론 정부도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거대 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 삼아 강행하고 있다. 논리로 풀어야 할 경제 정책이 극단적인 정치 포퓰리즘으로 처리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해 수확기에 쌀값이 20%나 하락했다. 정부는 서둘러 공공비축미 45만t을 포함해 90만t을 수매해 시장격리 조치했다. 이런 일시적 조치는 불가피했지만, 이를 제도화해 장기적으로 쌀값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쌀값이 하락하는 것은 공급량이 많기 때문이다. 쌀 공급은 줄지 않는데도 최근 10년간 쌀 소비량은 연평균 2%나 감소했다. 10년 전 1인당 연간 70㎏ 정도이던 쌀 소비량은 57㎏ 정도로 줄었다. 그래서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합리적 대책은 공급을 줄이거나 수요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도 가격을 무조건 지지해주는 것은 오히려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줄이는 악성 대책이다. 즉, 문제를 악화하는 것이다.
쌀은 우리의 주곡이다. 과거에는 농업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곡물이었다. 그래서 쌀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많은 정부 예산과 엄청난 노력을 투입했다. 그 결과 논의 경지 정리, 관개 시설화, 기계화가 거의 100% 진행됐다. 그래서 여타 작물보다 쌀농사가 쉽고 소득률이 높다.
그런데 정부가 가격까지 지지해주면 농업인은 여타 작물보다 쌀 생산에 더 매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쌀은 계속 과잉생산 되고 자급률 1% 내외인 밀과 옥수수는 물론 자급률이 10% 미만인 두류(콩류) 등은 생산이 더 위축돼 농업의 불균형이 심화할 것이다.
쌀은 지금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과거의 기준으로 쌀 문제를 판단하면 우리 농업 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를 봐야 한다. 한국은 2021년 사료 포함 곡물을 약 2200만t 소비했다. 쌀 420만t, 옥수수 1150만t, 밀 400만t, 두류 140만t 등이었다. 옥수수와 밀 생산도 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1인당 연간 식량 소비량을 보면 쌀 57㎏, 육류 56㎏, 우유 86㎏, 수산물 70㎏이다. 몇 년 안에 육류 소비량이 쌀보다 많아질 것이다. 즉, 축산물과 수산물 먹거리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2021년 농업 총생산 53조원의 내용을 보면 쌀 약 9조원, 채소 12조원, 과실 5조원, 축산 21조 원(소 8조원, 돼지 7조원 포함) 등이다. 쌀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우리 농업의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농업인이 쌀 집중 현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지난해 쌀 90만t을 수매해 보관하면서 이로 인한 소모성 비용이 7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조원이 넘는 수매 자금의 이자 비용과 보관 비용, 그리고 시장 격리 기간 동안 품질 저하에 따른 비용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 비용이 3~4년 뒤에는 연간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쌀 수급 문제를 악화시키면서 세금을 낭비하는 셈이다.
한국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을 교역 품목에서 제외했다. 우리 쌀과 농업을 보호하자고 농업인들이 강력하게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21년 관세율 513%로 쌀을 개방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최소시장접근(MMA) 규정 때문에 매년 외국산 쌀 41만t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1995년에 쌀을 교역 품목에서 제외할 때 우리 농업과 농업인을 위한다고 고집한 대책이었지만 지금은 영원한 족쇄이자 굴레가 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은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국회의 마지막 처리 과정에서 꼭 바로잡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장태평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