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전총리
2012년 10월 12일 노벨 평화상 위원회는 유럽연합(EU)을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는 참으로 반갑고 기뻤습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EU의 재정위기 및 불안정성이 조속히 극복되고 EU를 통한 유럽통합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며, 그런 뜻에서 EU를 격려할 필요가 있다는 저의 생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틀 전의 일이 떠올랐기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즉 이틀 전인 10일 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주요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귄터 논넨마허 대기자와 유럽·동북아 정세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EU 통합작업은 다양한 나라,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여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어서 과거의 대립·갈등과 참혹한 전쟁역사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 이 작업은 유럽을 위해서만 아니라 온 세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성공하여야 하며, 이런 거대한 작업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고 일부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이지만 잘 극복될 것이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러고는 EU의 성공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한·중·일에도 많은 영감을 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국은 지난달 23일 시행된 EU 탈퇴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위에 본 바와 같은 숭고한 EU 통합작업이 지장을 받거나 좌절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유럽 대륙은 역사적으로 전쟁의 구렁텅이였습니다. 6000만여 명을 희생시킨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이제는 정말 다시 이를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는 다짐을 합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럽대륙이 평화와 안전, 자유 속에서 살 수 있게 유럽합중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은 경제계획청장인 장 모네의 구상을 바탕으로, 당시 무기 제조 자원인 철강과 석탄을 초국가적인 기구가 공동 관리하고 공동시장 운영을 통해 전쟁을 막자는 이른바 쉬망선언을 발표합니다. 이에 독일,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 3국이 호응하여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발족합니다. 이것이 석탄, 철강 산업을 넘어 모든 산업으로 확대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원자력의 공동개발 및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로 발전합니다. 위 3개의 공동체가 1967년 사실상 단일공동체인 EC(European Communities)로 발전하고, 그 후 늘어난 12개 회원국은 경제통합 가속화와 정치통합을 위해 1991년 12월 유럽연합조약(마스트리흐트조약)을 체결하고 1993년 11월 EU를 출범시킵니다. EU는 회원국 확대교섭을 진전시키는 한편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사회 분야에서의 통합을 위한 공동외교안보정책 및 내무·사법 분야에서의 통합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2002년에는 공동화폐인 유로화까지 도입합니다. 영국은 뒤늦게 1973년에야 EC에 가입하였고 유로화도 사용하지 않고 가입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EU 회원이면서도 예외적 조치를 많이 두고 있는 영국이 이번에 반이민자 및 반EU 정서를 바탕으로 반가치(反價値) 및 반미래(反未來)의 결정을 하여 EU를 흔들어 놓은 것은 실로 유감입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입니다. 더욱이 이런 결과가 정치적 포퓰리즘에 영향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를 주도한 정치인들,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EU의 가치는 어떤 경우라도 손상될 수 없습니다. 탈퇴와 관련한 협상 과정에서 탈퇴 철회를 포함하여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일이 최소화되도록 영국을 비롯한 EU회원국들의 지혜와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479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