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현 동국대 석좌교수
미시경제학 개념 중에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는 것이 있다. 목초지를 마을 사람 모두가 공유했더니 각자 와서 자기 집 가축들을 풀어놓고 풀을 베어 가면서도 아무도 목초지 보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황무지로 변했다는 얘기다. 공유지의 비극은 사유재산 제도가 이기적인 제도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체 유지에 효과적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근에 셰어링 이코노미(Sharing Economy)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우버택시, 에어비앤비 사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정부 방침을 정했다. 공유한다는 것은 감성적으로 볼 때 모두 사이 좋게 지낸다는 느낌을 주어 무난해 보이지만 `공유지의 비극`에서 보듯이 공유개념 자체에 제도적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공유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우버택시와 에어비앤비로 시작된 셰어링 이코노미를 실상에 맞게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무엇이 적정할까? 번역을 고민하기 이전에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셰어링 이코노미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우버택시가 셰어링 이코노미의 좋은 사례라고들 하는데 우버택시는 대가를 주고받는 운송서비스계약의 새로운 형태다. 에어비앤비도 대가를 주고받는 신종 임대차계약 개념이다.
우버택시, 에어비앤비가 서구 언론에 회자되자 정부와 학계가 나서 공유경제 예찬론을 펴고 있는데 성급한 접근이다. 깊이와 폭이 있는 분석과 세밀한 관찰이 부족해 보인다.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공유경제로 포장해서 좌파이념 확산의 지렛대로 활용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경제관료들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거는 눈치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정보기술(IT) 기반의 새로운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개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택시 기사들이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금 인상을 위한 파업은 공유개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좌파 사회주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우버택시 기사들의 파업은 새로운 택시 영업 형태일 뿐임을 웅변하고 있다. 자기 소유차로 영업하는 택시기사들이 우버의 고객연결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어 우버의 요금 인하에 속수무책이다 보니 파업이라는 비상수단을 쓴 것이다. 우버의 가세로 택시 공급이 늘어나면 시장의 수급 원리에 따라 택시요금이 낮아지겠지만 기존 택시회사의 파산과 기존 택시기사들의 해고, 우버 기사로의 전직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에어비앤비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능은 거의 없지만 기존 호텔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대량 해고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고 빈익빈부익부의 상징적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셰어링 이코노미인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차분히 생각해 보자. 외국인 관광객에게 빌려줄 만한 수준의 아파트나 개인 주택을 소유하고 있거나 새로 마련한다는 것은 상류층이라는 증거인데, 그들에게 돈 벌 기회를 주면서 호텔에서 일하는 중하위 소득계층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에어비앤비의 사업 개념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셰어링 이코노미라고 정의한 것은 실수로 보인다. 셰어링 이코노미 하니까 앞뒤 재보지 않고 눈이 번쩍 떠진 지식인들이 있다면 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신종 서비스사업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도 우버, 에어비앤비가 `선수 교체` 내지 `손 바뀜`에 해당하며, 공급과잉과 빈익빈부익부를 초래하고 외국의 IT 기반 기업만 살찌운다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셰어링이 활성화될수록 필요한 자산 규모가 점차 줄어든다는 것은 초등학교 산수에 해당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가 활성화되는지에 관해 설명할 책임도 있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15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