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위기에 개혁 미룰수 없어
한강 기적 이끈 교육과 행정이 되레 도약을 가로막는 걸림돌
사법부도 진영논리의 격전장
낡은 고등교육 기간 줄이고 경제에 뻗은 ‘정치’는 청산해야
경제가 여전히 어렵다. 수출 부진이 예사롭지 않고, 청년실업률은 16년 만에 최고치에 올랐다. 대출 규제 강화와 앞당겨 쓴 반짝 장세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은 활력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롤러코스터 형국의 세계 금융시장,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에다 북한 핵 리스크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맞서 정부는 재정 조기 집행 규모를 늘리고, 자동차 소비세 인하를 연장했다. 일각에선 기준금리 인하를 재촉하고, 추경예산까지 거론한다. 상황에 따라선 이런 긴급 처방도 필요하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4대 개혁’을 비롯한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세계경제가 맞닥뜨린 어려움도 기술 혁신과 생산성 증가가 예전만 못한 데서 비롯됐다. 혁신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우려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는 해당 분야의 미숙련 노동에 한정될 뿐이지, 큰 틀에서 보면 잘못된 시각이다. 혁신은 물가를 낮추고, 생산성과 소득을 높이며 일자리를 늘려 경제를 살리는 정공법이다. 포클레인을 버리고 삽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생산성 향상은 내년부터 진행될 생산인구 감소를 벌충하는 돌파구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인적 자원과 국정 거버넌스(governance)로 집약할 수 있다. 베이비붐에 교육열이 더해져 대거 배출된 표준인력이 산업화를 이끌었다. 정부는 시의 적절한 전략을 세워 연구개발, 수출, 이공계 등에 자원을 집중 배분했다. 그 과정에서 행정부의 ‘개발독재’는 표심에 의한 정책 오염을 차단했다. 경제정책은 대체로 국익과 백년대계에 입각해 전문가의 식견을 기초로 입안되고 집행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가로막는 걸림돌도 산업화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인적 자원과 국정 거버넌스다. 저출산 추세와 낡은 교육 시스템 때문에 인적 자원의 역량부터 취약해졌다. 계열별 전공별 인력수급 괴리를 줄이고, 창의력을 함양하는 교육기법 보급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소프트웨어와 코딩(coding) 교육에 힘써야 한다. 온라인 공개강좌(MOOC)와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대신에 고등교육 기간은 단축해야 한다.
국정 거버넌스의 경우 전문가 우위는 옛말이 됐고 무게중심이 정치권으로 옮겨갔다. ‘반값’이니 ‘무상’이니 하는 대증요법과 대형마트 의무 휴업, 무역이익 공유제 등 날림 정책이 난무하는 반면에, 고용형태 다양화와 임금체계 개편 등 개혁과제는 표류하고 있다. 차별화 유혹에 이끌린 금산 분리, 자율형사립고, 산업은행 민영화 등의 정책 뒤집기도 예사가 됐다. 사법부조차 진영 논리의 격전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새만금, 행정수도, 4대강, 국사 교과서 등 핵심 정책은 이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필수 경로가 됐다.
개발시대 조장행정 유산도 버거운데 미숙한 대의정치마저 가세해 경제 시스템이 지식집약 시대에 걸맞은 새 옷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파업에 대응하는 대체근로는 선진국 표준이지만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는가 하면, 저축은행 피해를 정부더러 보상하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면세점 허가 갱신 기간 단축처럼 반(反)시장 규제가 확산되고, 육성 촉진 진흥 명목의 온갖 보조, 출연, 감면, 정책금융이 만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 곳곳에 뿌리내린 ‘큰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정치 입김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 창의 다양성을 진작하며, 개방과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특히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기초로 한 고용 및 인사 시스템은 서둘러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정규직만 금과옥조가 아니다. 주문형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붙박이 일자리보다 프리랜서처럼 독립, 수시, 단기, 복수의 일거리를 선호하는 추세에 발맞춰야 한다. 최근 발표된 ‘규제 프리존’이나 공유경제 활성화는 환영할 정책들이다. 이참에 양재·우면동 연구개발 특구 조성에 덧붙여 수도권 규제도 과감하게 풀었으면 좋겠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