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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후퇴하는 지금, 덜 걷고 더 써야강만수 | 2015.10.21 | N0.66

강만수 前 기획재정부 장관


세계경제는 과잉 공급의 시대… '부족' 전제로 한 정책 한계 맞아
우리 경제, 거시정책에 상대적 여유… 5년 전 철회한 減稅 재검토해볼만
한계에 달한 내수 늘리기 위해 고속철 건설 등 재정지출 확대해야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는 놀랐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견해가 나왔다. 그중 두 가지 인상적인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가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 비유하여 너무 많이 노는 미국·영국·그리스·스페인과 너무 일만 하는 독일·일본·중국이 만든 소비·투자·국제수지에 대한 구조적 불균형을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든 것이고, 또 하나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과거 200년의 위기 역사에 비춰볼 때 선진국들이 위기 전의 성장을 회복하려면 '1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세계 3.8%, 선진국 2.3%로 전망했다가 올해 들어 두 차례나 낮추다가 10월에는 각각 3.1%, 2.0%로 낮췄다. 달러 기준으로 보면 세계경제는 2009년 이후 또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는 놀라운 전망도 나온다. 미국·일본·EU는 제로 금리로 10조달러 정도의 돈을 풀고, 신흥국들도 따라 돈을 풀고 환율을 절하했지만 위기 전의 세계 5%대, 선진국 3%대의 성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IMF는 2016년 세계경제 성장 전망도 3.6%로 어둡게 보고 있다. 마틴 울프의 분석과 케네스 로고프의 예언대로 위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 중앙은행 연준(Fed)이 지난 9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12월에도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경제에 대해 원유·목화·철광 등을 포함해 '거의 모든 품목의 과잉(excess of almost everything)'을 걱정했다. 미국의 내구 소비재 재고는 통계 작성 이후 최고인 4130억달러에 달했고, 중국 자동차 재고는 2년 6개월분에 달했고, 세계 상품 가격은 34% 정도 급락하여 2009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OECD 국가들의 국가 채무는 100% 이상 증가했고, 세계 자산 가격은 263조달러 정도로 2008년 위기 전보다 두 배 정도 부풀려졌다고 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지난 9월 수출은 마이너스 3.7%, 수입은 마이너스 20.4%로 크게 감소해 10%대 성장에서 올해 7%대로 주저앉았고 주가도 30% 넘게 폭락했다.


IMF는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을 지난해 4.0%에서 올해 2.7%로 낮췄다. 올해 들어 수출과 수입이 계속 감소했고 이달 들어 10일까지 수출은 마이너스 18.2%, 수입 마이너스 23.6%(통관기준)로 크게 감소했고 지난달 중국의 한국에 대한 수입은 24.3%나 줄었다. 수출 의존도가 50% 넘고 중국 수출 비중이 25%인 우리 경제는 아주 어두워졌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는 내수 시장 확대도 쉽지 않다.


저성장, 저물가와 과잉 공급에 빠진 세계경제 조건에서 우리 경제의 나갈 길을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다. 대외적으로 선진국들은 이미 제로 금리에 10조달러 넘는 돈을 풀어 금융정책에 여유가 없고 신흥국들도 환율을 20% 전후로 이미 절하해 여력이 소진됐다. OECD 국가들도 이미 국가 채무가 100%를 넘어 추가적인 감세와 지출 확대도 어렵다. 세계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과잉 공급의 시대(Age of Oversupply)'를 맞았으며 부족(shortage)을 전제로 한 경제 정책은 한계를 맞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환율·금리·조세·지출 등 거시 정책 변수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많다. 환율도 몇 년 동안 경쟁국들이 절하할 때 변동이 없었고 금리도 선진국에 비해 1%포인트 정도 높은 상태다. 세율도 과거 최고 소득세 70%, 법인세 34%에서 각각 35%와 25%로 내리는 동안 세입이 증가했던 경험과 과거 선진국의 사례에서 감세 정책이 최고의 부양책이었다는 연구 결과로 볼 때 2010년 철회한 감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출도 우리의 국가 채무 비율이 40% 정도라는 점에서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은 선진국에 비해 여력이 많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지금 정책 여력을 갖고 있는 우리가 아낄 이유가 없다. 환율·금리·조세와 지출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때다. 특히 한계에 달한 내수 확대를 위해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행사도 좋지만 상하수도 보수, 수자원 비축, 고속철 건설, 도로 보수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출을 검토해 볼 때다. 세계경제가 침체하고 있는 지금이 우리에게 기회일 수 있다. 세계 경기가 좋을 때는 우리가 한 걸음 가도 다른 나라도 한 걸음 가기 때문에 순위를 바꾸기 어렵다. 세계가 후퇴할 때 지금 한 걸음은 두 걸음이 된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0/20151020042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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