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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를 부러워하시는 분들께 김대기 | 2015.10.18 | N0.65

김대기 KDI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지난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연임됐다. 안보 관련법으로 지지도가 좀 떨어져도 일본은 강력한 리더십을 선택했다. 그 배경에는 장기 침체에 찌든 경제를 아베노믹스가 일으켜주리라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일본 경제는 아베 집권 이후 분위기가 바뀐 게 사실이다. 18년 만에 실업률 최저, 주가 최고, 상장기업 순이익 최고, 관광객 최고 등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 아베노믹스가 엔화를 대폭 절하시킨 결과다. 그리고 이번달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타결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우리도 이런 호시절이 있었다. 거꾸로 엔화가 100엔당 1500원대까지 절상되던 2010~2011년 기간이다. 이 기간 중 평균 성장률은 5.1%, 취업자는 37만명씩 늘었고 주가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수출이 평균 23.7% 늘면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무역 1조달러 달성 국가가 됐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도 성사됐고 대한민국이 최초로 일본보다 국가신용이 높아지는 이변도 발생했다.


그러나 물가가 4% 넘게 오르면서 정부는 곧 역풍에 시달렸다. 당시 물가는 사실 외부 요인이 더 컸다. 국제 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르고, 구리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사상 최고로 오르던 시절이다. 여기에다 무려 330만마리의 소와 돼지를 매장시킨 구제역 여파로 육류 가격이 뛰고, 기상이변으로 배추 한 포기가 1만원을 넘어갔다.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론은 정부가 수출 대기업만을 위해 원화를 절하시킨 결과라고 집중 성토했다. 사실 엔화가 이상급등했지, 달러당 원화는 평균 1150원으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후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농산물을 수입하고,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금리와 환율도 안정시켰다.


그 결과 물가가 안정되기 시작하니까 야당은 이번에는 정부가 물가지수를 조작했다고 공격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공격 목표를 물가에서 양극화로 바꿨다. 대기업만 위하는 정책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여당마저 이 논리를 수용하면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가 됐다. 이후 기업을 옥죄는 각종 조치가 양산되고 경제는 시들해졌다. 엔고로 힘을 받던 대한민국 경제는 우리끼리 흠집 내면서 망가졌다.


그런데 양극화가 문제라면 현재 일본이 더 심각하다. 일본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5% 수준으로 우리의 40%에 비하면 아주 낮다. 다시 말해 수출이 잘돼도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우리보다 약하다. 엔저 효과를 보는 것은 수출과 관광 산업뿐이고 내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수입 비용 상승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대기업을 빼고는 임금을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다. 지난해 소비세 인상 영향으로 실질임금은 오히려 2% 이상 줄었다. 그러나 국민은 아베노믹스를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경제의 진짜 위험은 GDP의 250%에 달하는 국가부채에서 나온다. 해마다 40조엔씩 늘어나는 적자 국채를 그동안 연금, 보험 등에서 사줬지만 이제는 중앙은행(BOJ)이 매입한다. 연금과 보험은 국채를 버리고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금펀드라는 GPIF는 주식 비중을 지난해 24%에서 최근 40% 이상 확대하면서 주가를 올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BOJ는 국채를 워낙 많이 매입해 자산이 GDP 대비 70%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일본 경제가 기초가 탄탄하고 외환보유액도 많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상황은 지속될 수 없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거시경제 위험성이 고조되는데도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밀고 나가고 있다.


만약 아베노믹스가 우리나라에서 펼쳐졌으면 어땠을까?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 아예 추진 불가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또 한편 그 부작용을 생각하면 부러워할 이유도 없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99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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