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前 기획재정부 장관
호두 가위에 낀 한국 경제… 선진국은 돈 찍어 통화전쟁… 원화 가치는 고공 행진
상장기업 30% 좀비 신세인데 노조는 파업, 또 파업… 사회 전체가 위기 극복 나서야
지금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이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호두 가위에 낀 호두의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호두는 깨질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인 해법은 감세(減稅)와 지출 확대에 의한 적극적 재정정책, 금리 인하와 환율 조정에 의한 적극적 금융정책, 노사 평화와 규제 완화에 의한 적극적 투자정책, 지속적 기업 구조조정에 의한 기업의 체질 강화 등이다. 안타깝게도 대책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2008년 도입된 감세 정책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진정되자 2010년 철회된 후 증세 정책이 대두되었고, 지출 확대는 세입 감소에 의해 난관에 봉착했다. 경쟁 선진국들이 제로(0) 금리에 돈을 마구 찍어내고 통화가치를 내리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왔다. 일본은 환율을 달러당 80엔대에서 120엔대로 40% 전후 절하시켜 수출을 살릴 때 우리는 달러당 1150원 전후의 환율을 유지해서 엄청난 상대적인 고평가를 초래하여 수출은 감소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고평가를 유지하던 중국도 수출 부진을 견디지 못해 지난달 환율을 5% 가까이 절하함으로써 주요 교역국 중 우리만 나 홀로 고평가를 유지하여 수출 부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 도요타는 자동차 가격을 일부 지역에서 30%나 인하시켜 같은 차종에서 현대자동차보다 값이 싸져 기세를 올리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위한 노사정 타협은 불확실성을 남기고, 8조원의 적자를 낸 현대·삼성·대우 조선(造船) 3사는 공동 파업에 들어갔고,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난 금호타이어는 한 달 가까이 파업 중이다. 한진그룹의 7성급 한옥 호텔은 규제의 담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상장사의 30%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좀비 상태에 들어갔지만 대책은 없다.
몇 년 전 한국을 잘 아는 한 일본 경제학자는 2015년 전후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예측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경험을 기초로 한국의 빠른 노령화, 노동시장 경직성, 높은 청년실업 등을 대입한 직관의 결과라고 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2015년 전후에 나타날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의 감소라고 했다.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4만명이 정점이 될 것이라고 통계청은 추계하고 있다.
반대로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발행한 '메가체인지 2050년'에서 한국이 2050년 미국·일본·독일 등 모든 선진국을 제치고 최고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자유주의가 크게 전진도 후퇴도 않는 관리된 세계화를 전제로 노동력과 자본 재고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의 성장이 2009년까지의 통계적 추세와 같다는 가정을 기초로 한 수리적 예측이었다. 2050년 1인당 실질 GDP는 미국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105.0(1위), 독일이 87.7(3위), 러시아가 71.9(5위), 일본이 58.3(8위), 중국이 52.3(9위)이라는 것이었다. 2009년 OECD 국가들이 평균 마이너스 3.5%의 성장을 할 때 우리는 플러스 0.3%의 성장을 했고, 다음 해 2010년 경제 규모는 인구가 20배나 되는 인도와 비슷하게 되었고, 수출은 세계 7위로 5단계를 뛰어넘었으며, R&D 투자는 2012년 GDP 대비 4.36%로 세계 1위가 되었던 역동성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배경에는 환율 실세화에 의한 가격 경쟁력의 상승, R&D 투자 확대에 의한 기술 경쟁력의 제고, 적극적인 재정금융 정책이 핵심 변수였다고 OECD와 IMF는 평가하였다.
두 가지 상반된 예측 중 어느 것이 맞을지는 지금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2015년 전후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 부국(富國)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은 맞을 것 같다.
우리 경제는 전쟁의 폐허에서 패기 하나로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두 번의 경제위기를 뛰어넘어 국가의 순위를 바꾸고 더 강해졌다. 우리 경제를 오르막길로 끌어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소명이다. 세계 경제가 아직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침체되어가고, 세계 교역도 위축되어 가고 있어 어려운 국면이다. 여건도 어렵고 핑계도 있다.
정치인, 행정관료, 노동자와 기업인 모두 함께 깊이 생각하고 내우외환을 돌파하는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전략과 해법은 모두 다 알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바라보고 환율 개입에 주저하고, 증세를 논의하고 노사 평화를 외면하고 규제 완화를 주저하는 소극적인 전략으로는 내리막길을 피하기 어렵다. 확실한 전략과 단호한 행동이 필요한 때다. 역사는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 만든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5/20150915041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