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MB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그만 둔 직후 성균관대 교수로 임용돼 자신의 학문적인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성균관대 호암관에 있는 자신의 교수 연구실에서 1시간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그레이트 코리아'로 가기 위한 방안을 가감없이 제시했다. 그는 꽤 많은 시간을 MOOC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다른 어떤 부문보다 교육개혁에 대한 그의 열망이 높아보였다.
▲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을 진단해달라
전반적으로 기대보다 활력을 빨리 되찾지 못하고 있으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경착륙이 우려되는 국면은 아니다. 다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GDP 갭(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 격차)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저성장 기조가 이어진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이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 상황이 기대만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제가 부진한 탓이고, 또 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것은 한국 경제가 대외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한 요인이다. 특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경제가 부진해 수출 위축 등으로 재고가 쌓이고 가동률이 낮은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부진 이유를 모두 대외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1년 반 정도 전부터 유가가 크게 하락해 한국 같은 자원 빈국에는 플러스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경제가 부진하긴 하지만 2012년을 저점으로 이후에는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 경제도 종전보다 나아지는 조짐이 있고 유로존도 미미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신흥국 중 인도와 멕시코는 개혁 조치에 힘입어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구조적인 문제다. 저출산과 고령화, 노사관계, 노사관계로 빚어진 고용의 경직성, 낡은 교육과 R&D 시스템, 그 밖에도 생산적이지 못한 정치 시스템과 과잉으로 여겨지는 지방자치제도 등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도록 발목 잡고 있다.
해법은 단기적 대응과 구조 개혁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러한 거시적 정책도 필요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펀더멘털(Fundamental)'을 끌어올려야 한다. 인구를 늘린다든지 생산성을 끌어올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돼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도 4대 구조 개혁에 나섰는데 이와 함께 복지시스템, 징병제도 개선 등 전방위에 걸쳐서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한다.
▲ 4대 구조 개혁을 정권 초반에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정권 첫해에 대선 공약 이행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정년 연장을 해버렸다. 그때 임금피크제를 동시에 도입했어야 하는데 정년 연장만 덜컥 해버렸다. (정년 연장할 때) 구조 개혁을 같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정년 연장이라는 당근만 줘버리고 규범을 바로 세우는 일을 안 했다는 뜻이다. 지금 와서 뒤늦게 하려니 어려운 것이다. 전략적으로 수순이 헝클어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시행하는 건 올바른 방향이다.
▲ 중국경제와의 연동성이 지나치게 크다는 우려도 있는데 앞으로 대중국 관계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중국과는 한편으론 경쟁 관계에 있지만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의도적으로 의존도를 낮추기보다는 중국 시장에 진출해 내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중국의 대체 시장인 아세안 쪽의 비중을 높여나가자는 것은 얘기가 될지언정 중국에서의 점유율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줄여나가자는 것은 바른 방향이 아니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오다 최근 눈에 띄게 감속 단계로 돌입했는데, 이는 중국 정부가 의도한 방향이기도 하다. 고정자산 투자와 수출에 의존하던 경제 동력을 지금은 내수와 서비스 산업 쪽으로 전환해 질적 성장, 감속 성장을 오히려 목표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을 위해선 소득 격차나 지역 격차 완화 문제 등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국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본다.
중국 경제는 종전처럼 고속 성장이 아니라도 중속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고 제조업 수출에서 내수와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다. 그런 중국경제의 전환 과정을 잘 읽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재완 이사장은 교육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 많은 사람이 한국 경제를 저성장 기조가 확산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저성장 기조란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절대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GDP 갭이다. GDP 갭을 줄이기 위해 생산가능 인구를 늘리고 경제활동인구를 극대화해야 한다. 경제활동인구를 극대화하기위해서는 젊은 층의 입직 연령을 당기는 게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10명 중에 7명은 대학에 가고, 대학에 가도 어학연수와 휴학 등으로 평균 1,2년은 더 다니고 졸업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20대 후반에 가서야 첫 직장을 얻는다. OECD 평균 입직연령보다 3,4년 이상 늦다. 이걸 앞당겨야 한다. 여러 해법이 있겠지만 고등교육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우선 이공계와 인문계의 대학 정원을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게 바꿔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이공계와 인문계 인재를 8대 2의 비율로 뽑는데 대학 정원은 5대 5다. 인문계 쪽 취업난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미국, 영국 등에서 확산하고 있는 MOOC(대중개방형온라인 교육시스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OOC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수강하기 때문에 학비가 싸고 수많은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Q&A도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심층적으로 할 수 있다. 학생이 캠퍼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일과 학업의 병행이 가능하다. 인문계는 2년 수료하고 먼저 취업한 뒤 나머지 2년에 걸쳐 자신이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온라인 강의로 듣고 학위를 받는 방식으로 개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걸 하는 게 리더십이다. 국민께 '따라와 달라, 그렇지 않으면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제가 말하는 '창도(唱道)'의 리더십이다. 2보 전진하기 위해 1보는 후퇴하는 게 좋다. 구조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이 변화되고 거기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저항할 텐데 대(大)를 위해선 조금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비전과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창조경제는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 창조경제란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창출하고, 다른 영역끼리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해 새 모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민간과 기업에 있고, 정부의 역할은 창조경제가 꽃 피울 수 있는 여건과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부분에 얽혀있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진입 장벽과 부문 간 이동을 막는 울타리를 없애고 민간에 입김을 행사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창조혁신센터는 일종의 ‘클러스터링’이다. 모여서 시너지를 내자는 아이디어이기도 하고 정부가 지역마다 특정 기업 등을 선택과 집중 형태로 끌고 가자는 아이디어인데 처음에는 이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창조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부의 각종 규제와 입김 자체를 줄이고 민간이 스스로 잘 할 수 있게 하는 게 요체다.
▲ 최근 재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롯데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지배 구조 문제 등 재벌 개혁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대기업 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를 규제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맞고 한국 경제 파이가 더 커지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 본다. 그러나 규제 중에는 반재벌 정서에 기반해 만들어진 실효성 없는 규제도 많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약조건이 된다. 또 그 틈새에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 대기업 집단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롯데 그룹의 경우처럼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순환출자는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고, 가족 경영 형태로 대물림하는 것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아주경제>에서 인터뷰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ajunews.com/view/20150822195640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