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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김태효 | 2015.08.03 | N0.55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안보·경제 등 韓·日 협력 따른 혜택 커도 '親日' 낙인에 주저… 日은 불신·과거사 공포 여전해
기억은 하되 실리 좇는 中처럼 원칙과 처방 조화롭게 엮어낸 무게감 있는 對日 정책 펼쳐야


지난 6월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기념식에 차례로 참석할 때만 해도 3년간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가 회복될 전기(轉機)가 마련되었나 싶었다. 양국 정상 간 첫 회담 개최에 대한 전망도 커지고 있었다.


한·일 관계가 다시 뒤틀리면서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일 외교 당국이 논의한 한국인 징용자에 관한 '표현' 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였다. 7월 5일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한·일 외교 당국은 '강요된 노동(forced to work)'이라고 통일해 표현하기로 사전에 약속했지만, 한국은 막상 회의 현장에서 '강제 노동(forced labor)'으로 발언한 것이다.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는 강제 노동 표현을 부인하며 반발했고 우리 정부는 세상이 다 알고 인정하는 것을 비켜가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일침을 놓았다. 우리 국민은 진실 게임의 일부 퍼즐만 접한 상황에서 일본의 소극적인 과거사 해결 노력을 내심 질책하였고, 한편으로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일본의 문화유산에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시대의 잘못이 기록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일본의 어느 일간지는 7월 11일자 보도에서 "외무장관회담 합의 무시한 한국, 한국의 악의에 넘친 행위" 등을 운운하며 일본 내 격앙된 분위기를 대변했다. 또 다른 신문은 7월 14일자 보도에서 이번 일을 한국의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면서 그간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공식 외교 라인 말고도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과 일본의 국가안보국(NSC) 간 비선 협의가 진행돼 왔음을 밝혔다. 한·일 관계의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를 양국 정상의 최측근 고위 관료들이 협의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은 일본이 박근혜 정부와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기 싫다는 뜻을 불쾌감을 실어 드러낸 것이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불만은 아무리 나열해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과거의 불편한 진실들을 부인하거나 약화시키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시도는 국제사회 그 누구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과거사'라는 굴레 앞에서 반일 감정은 한·일 관계의 다른 많은 것을 압도하는 대중 정서의 구심점이기까지 하다. 한국의 국력과 한국인의 자신감이 커지면서 역사 갈등과 한·일 협력을 병행하는 문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력해 얻을 혜택이 안보와 경제 영역을 망라해 즐비한데도 그 필요성을 역설하려면 '친일' 낙인이라는 크나큰 정치적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여론조사 결과건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역대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의 감정은 몇 년을 주기로 커다란 변화를 보이는 반면, 일본인의 마음은 한번 바뀌면 몇십 년을 간다는 것이다. 사과받을 한국인이 화가 나 있는 것은 알겠는데, 사과해야 할 일본이 정부·지식인·일반 대중을 막론하고 한국에 화가 나 있는 것은 왜인가.


일본인의 마음을 단순하게 축약하면, 약속하고 합의한 내용을 어기는 한국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강제 징용 문제는 분명히 1965년 수교 당시 정부 간 약속으로 명문화해 사과하고 보상했는데 한국 법원의 판결과 한국인의 여론은 아직도 일본의 책임을 묻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이번 '강제 노동' 표기 사태도 결국 1965년 한·일 협정문을 고수하려는 일본의 방어 심리와 일본의 불충분한 과거사 반성은 계속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한국의 도덕관이 충돌한 결과다. 아베 내각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공포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이 사과를 해도 과연 한국인들이 이를 마지막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그러한 합의에 동의한 한국 정부가 과연 국내 여론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그것이다.


한국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충족시키고자 노력할 마음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우리도 과거사 문제에 관한 원칙과 입장을 재점검할 때가 됐다. 지난주에 필자는 상해회의에 이어 난징대학살기념관을 찾았다. 방대한 전시물들을 접하고 상념에 젖어 나오려는데 기념관 출구 모퉁이 천장에서 12초마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에 걸쳐 30만명의 시민이 일본군에 의해 12초마다 한 명씩 희생됐다는 의미였다. 일본의 잘못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일본과 실리적 협력을 적극 추진하는 중국의 두 얼굴을 보았다. 한국 정부는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원칙과 처방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무게감 있는 대일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2/20150802021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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