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前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내년 퇴임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10년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은 적이 있다. 반 총장은 "기후변화에 활로를 마련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기실 분쟁 해결이나 빈곤 퇴치 같은 의제는 역대 UN사무총장들이 매달려온 단골 메뉴로 차별화된 업적이 되기는 어렵다. 기후변화는 다르다. 21세기의 지구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올 연말 파리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2020년 이후 모든 당사국이 참여하는 '신(新)기후체제' 출범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세계사적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해 12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20차 기후총회에서 반 총장은 "주요국들부터 (2015년) 3월까지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계획(INDC)을 제출, 국제사회를 선도해 달라"고 강조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의 별도 면담에서는 GCF(녹색기후기금) 유치국인 한국이 더 과감히 나서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9월 경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준비가 덜 되기도 했거니와 다른 나라들이 하는 걸 봐가면서 하겠다는 거였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사안을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제출 계획을 6월로 앞당기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위한 조율 작업은 외부에 감지되고 있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사실 별 진척이 없어 눈 가리고 아웅하게 될 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 것은 환경부와 산업자원부의 첨예한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율 업무를 맡은 총리실 관계자는 "당장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나라의 미래 진로가 걸린 일인데 총리실이 무슨 힘이 있어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이 기후변화에 능동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의 도전을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최근 KISTEP 보고서에서 보듯 한국은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 선진국에 근접했으며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ESS(전력저장장치)는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POST 2020의 기본계획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다면 장차 수십조달러로 커질 신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상황을 보아가며 남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국가를 '반응국가(reaction state)'라고 부른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건 우리가 원하는 국가가 그런 것인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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