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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에 불경기 벗어나려는 두 나라이종화 | 2015.05.02 | N0.36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주장한 세계경제의 ‘구조적 장기 침체’는 지난 2년간 언론과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7년이 지났지만 민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고 저성장·저물가의 고착화로 장기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 생산성 증가 둔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들로 저축은 너무 많고 투자는 부진해 실업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자들 곳간에 곡식은 많이 쌓여 있지만, 새로 볍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지 않으니 일자리는 부족하고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나는 격이다.

 
경제의 균형 실질 이자율이 매우 낮거나 마이너스여야만 수지가 맞아 투자가 늘어나고 생산이 회복될 수 있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서머스는 정책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양적완화로 계속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경기회복보다는 오히려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서 부족한 민간 수요를 보완해야만 저성장을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는 미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 침체’에 있지 않다고 반박한다. 자신이 재임 시에 한 양적완화 정책을 옹호하면서 사람들의 물가상승 기대를 높여서 실질 이자율을 낮추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완전고용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인프라 투자와 같은 재정지출은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불황에서 대부분 국가들이 정부 부채가 많아 쉽게 지출을 늘리기 어렵고 정부 투자의 생산성이 낮아 성장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중에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을 각각 책임졌던 서머스와 버냉키의 논쟁은 지금의 불황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것인지, 미국 연준이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지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시장의 관심이 크다.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의 성장 추세가 1분기 들어 연율 0.2%로 급락하고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누가 옳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도 불황이 깊어지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8%(전년 동기 대비 2.4%)에 그치면서 올해 3%대 성장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15~29세의 청년실업률은 2월에 11.1%로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지난해에 세수 부족으로 4분기에 재정지출이 많이 줄어들어 경제가 나빠지는 재정절벽이 발생했는데,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차입을 더 하더라도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회복과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서는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에 소극적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경우에도 우리가 꼭 올릴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을 더 강조했다. 반면에 한국은행은 지난 8월부터 금리를 세 번에 걸쳐 낮췄기 때문에 당장은 충분하다는 견해다. 한은은 금리가 너무 낮아 발생할 수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고 기재부는 정부 부채가 많아져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다.

 
한국의 경우 아직 재정 여건이 나쁘지 않아 부채가 좀 더 늘더라도 재정지출을 추가로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그러나 단기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린다면 그것을 고용과 소득창출 효과가 큰 부문에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지출이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소득을 늘리게 되면 세수도 늘어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무엇보다 45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정책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산 낭비를 없애고 재정 개혁을 추진해 중기에 걸쳐 정부 빚이 너무 늘어나지 않도록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

 
서머스-버냉키 논쟁이나 한은과 기재부의 논쟁은 단기에 불경기를 벗어나기 위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장기에 걸쳐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 및 재정 완화정책에 의존하는 경기회복은 그 효과가 단기적이고 제한적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수요 확대뿐 아니라 생산성 증가와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경제 혁신을 통해 경쟁 촉진, 창업 활성화, 노동 및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민간 투자가 활발해지고 고용과 성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713853&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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