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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戰略 필요한 한국 외교김태효 | 2015.04.09 | N0.27

김태효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어려운 외교적 상황일수록 구호보다 대외전략 밑그림과 탄탄한 정책 콘텐츠 필요
한반도 문제도 국제적 협력 이끌어 낼 외교적 역동성과 自尊 지킬 통찰·혜안 보여야

 

지난 금요일은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는 성(聖)금요일(Good Friday)이었다. 성경의 주요 복음서들은 서기 33년 4월 첫째 금요일에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예수는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된다. 이튿날 아침 예수를 심문한 로마제국 총독 빌라도는 유태인 군중에게 말한다.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罪目)도 찾지 못하였소." 이에 군중이 외친다.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는 여러 차례 망설이다가 군중의 위세에 눌려 예수를 넘겨준다. 판단의 중심이 없이 여론에 떠밀린 결정이었고, 예수에 대한 십자가형 집행을 군중의 손에 맡겼기 때문에 자신의 판결에 대한 책임조차도 회피한 결과가 되었다.


요즘 한국의 외교가 이와 유사한 형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대 정부에서도 그랬듯이 박근혜 정부도 임기 초반 2년 동안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을 제일 잘했다는 여론조사가 주를 이뤘다. 북한 정권의 위협적인 언사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 있는 입장을 지켜내면서 미국·중국·유럽·중동의 순방 외교가 대외 관계 강화에 기여했다는 국민의 인식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의 중반 이후부터는 구체적인 성과가 국정 평가를 좌우한다. 대외 전략의 밑그림과 이를 떠받치는 정책의 콘텐츠가 탄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비핵화를 전제로 한 진정성 있는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한반도에 어떠한 신뢰를 구축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한·일 관계가 3년째 답보하고 중국과 일본이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구상'도 밝혀야 한다. 한국이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다가 언론과 국민의 염려가 인내의 한계에 다다를 시점에 이르면 '국익(國益) 최우선' 방침을 확인하곤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국익'이라는 말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국익의 근간을 이루는 나라의 안보를 지켜내는 일에 정부의 치열한 모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방의 등탑을 철거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자제시키는 유연함을 보여주었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어떠한 핵·미사일 공격도 사전에 무력화시키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북한이 우리에게 겨누고 있는 군사 위협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일에 소홀하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수도권 이남 지역이 각별히 취약하다면 사거리 800㎞의 한국형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는 어느 수준까지 구비하여 한·미 연합 전력에 반영할 것인지를 일찌감치 안팎으로 설명하고 납득시켰어야 했다. 국민이 자세한 기밀사항까지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나라의 평화를 지켜낼 방안과 기개를 갖추고 있는지 염려할 뿐이다. 우리의 대비 태세와 대북 억지에 대한 결의가 어떠한지에 대한 대강의 느낌 정도는 북한도 알게 해 줘야 그들의 오판(誤判)을 막을 수 있다.


한·미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인식 또한 미덥지 않게 들리는 것은 불편한 것은 그냥 참고 지켜보는 미국과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는 한국 외교의 역부족이 교차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보는 누구보다도 한국이 나서서 지켜야 하는데 자기 집 하늘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뻥 뚫려 있는데도 미국이 아직 이 문제를 제기해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서 될 일인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설립돼 봐야 중국이 천명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쉽고 빠른 대출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왜냐하면 독재와 부패를 방치한 금융 지원은 수혜국의 진정한 발전도 AIIB의 자금 회수도 가로막을 것이라고, 그래서 한국은 그냥 정치적 차원에서 가입하는 것이라고 왜 당당하게 설명하지 못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한·일 간 반목 때문에 워싱턴에선 답답함을 넘어선 짜증이 밀려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아베 총리가 먼저 바뀌면 하는 주문만 외우고 있을 것인가.


한반도 문제도 한국이 여타 글로벌 이슈에 대해 기여한 만큼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를 만들고자 할 때 외교의 역동성이 배가된다. 나라의 힘이 충분치 않아도 세상을 꿰뚫고 있으면 그 통찰과 혜안에 상대방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06/20150406035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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