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법을 어기면서 청와대에 검사가 파견되었다고 여론이 비등하다. 정부는 파견이 아니며, 따라서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청와대에 검사가 파견되어 일을 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나 야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된다 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여 왔고, 드디어 여야합의에 의하여 1997년 1월부터 검찰청법이 개정 시행되었다. ‘검사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검찰청법 제44조제2항에 ‘검사는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현직 검사를 검사직에서 사임하도록 사표를 받고, 청와대에서 검사가 아닌 일반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방식을 빌어 이 규정을 피해가고 있다. 그리고 청와대근무가 끝나면 검사로 다시 복직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런 검사가 법이 개정된 이후 지난 정부까지 모두 50명이나 되며, 이번 정부에서만도 근무예정자까지 포함하여 14명이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정치와 행정의 현실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사안이라 생각하여 몇 가지 소회를 표하고자 한다.
첫째, 법제도를 만들 때 지킬 수 없는 법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법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만큼 검사파견이 업무수행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 법을 개정했던 김영삼 정부에서까지도 지키지를 못했다. 뻔히 지키기 어려운 것을 알았기에 법률을 개정하면서 당시 여야는 검사가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편법을 서로 묵인하기로 이면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법을 왜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모양내기 입법과 정치가 다반사이다. 이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소위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너무 명분만 쫒은 과잉입법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이렇게 되면, 또 편법이 만연되어 당초의 취지도 희석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법이 정해져 있으면 그대로 지켜야 한다. 이는 국가질서의 기본이다. 만일 지킬 수 없으면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이를 어길 때 처벌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국민과 국법질서를 너무나 가볍게 보는 처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소크라테스는 그 옛날 “악법도 법”이라 하였다. 만일 선진 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다. 선거공약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부 공직에 대한 공모방식 제도를 들 수 있다. 공모제도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현실에 맞도록 임명권자의 인사권을 보장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 제대로 공모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 하겠다.
셋째, 이러한 현상이 법을 단호하게 집행하는 사람들인 검찰에게 요구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느 검사가 법을 위반하고 탈법행위를 하고 싶겠는가? 실질이 다른데 형식적으로 요건을 갖추는 것을 편법이라 한다. 검찰에서도 아주 우수한 지도급 인재들이 편법에 몸을 맡기는 그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들은 평생 법을 위해 살고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국회의원들의 대통령특별보좌관 임명도 궤를 같이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설사 명백하게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에 더욱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둘 중 하나이다. 법을 성실하게 지키든지 아니면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일이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고, 또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가로 가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