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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인사청문회 문제의 본질과 해법김명식 | 2015.03.04 | N0.18

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찰행정학과


청문회 핵심문제는 국회의 입법권 남용
헌법 위배 시정 않고서는 해결책 없어
성문법에 의존 않는 국회 정치공세 문제
결격사유 규정한 법적 기준부터 세워야


우여곡절 끝에 이완구 국무총리가 후보자로 지명된 지 25일 만인 2월 17일 임명장을 받았다. 조만간 열릴 3명의 국무위원과 금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여태껏 익숙하게 봐 왔던 장면들이 연출될 것이다. 그나마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 나타난 여러 문제를 놓고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많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들을 보면 암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통증만 완화하려는 것 같아 답답하다. 청문회의 핵심 문제는 헌법을 위배한 국회의 입법권 남용에 있는데, 이를 시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처방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법’은 청문회의 구성`절차`운영에 관한 법이다. 그러나 국회는 이 내부 회의규정에 앞서 어떤 사람을 국무위원 등에 임명하면 안 되는지 그 기준부터 만들었어야 했다. 즉 헌법상 동의권 없는 직위에는 개인적 판단의 면접이 아니라, 직업공무원의 임용 결격사유를 정한 ‘국가공무원법’ 제33조보다 더 엄격한 법적 기준으로서, 예컨대 청문회의 단골메뉴인 병역기피,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해당하는 사람을 임명하지 못하도록 법규화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법률로 임명 요건을 정하면, 대통령은 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을 찾아 누구라도 선임할 수 있는 것이 우리 헌법상 3권분립의 기본취지이다.


응당 해야 할 성문 입법을 방치하고 말로써 지적하는 국회의 정치적 공세 앞에서는 청와대가 아무리 엄격한 자체 검증기준을 정해 후보자를 내세워도 속수무책이 될 뿐이다. 적용할 법적 기준이 없으니 후보가 동료의원이면 관대해지고 정치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고무줄 청문회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려는 공직후보자는 아직 해당 직위에서 아무 일을 안 했으니 직무와 관련하여 법적`정치적으로 책임질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불려 나와 피의자 심문보다 더한 공개적 망신을 당해왔다. 고위공직 후보자라고 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일사부재리 원칙, 연좌제 금지, 사생활 보호, 공무담임권 등 헌법상 기본권이 함부로 침해되어선 안 된다.


국회가 법적 요건을 안 만드는 이유는, 의원도 정무직공무원이라 그것이 자신들의 공천심사 및 당선기준이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고위공직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의 부작용이다. 헌법은 국회가 임명 동의하는 국무총리나 감사원장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명된 후 무슨 직무상 잘못이 있을 때 출석요구, 해임건의, 탄핵소추 등으로 책임을 물음으로써 상호 견제를 하게 했는데 인사청문회는 이 균형을 깬 것이다.


국회가 헌법을 무시하는 법률을 만드니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을 경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부 광역 자치단체는 지방의회와의 ‘협약’으로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다. 이는 법치행정 원칙이 지배되어야 할 법정 공공기관을 사적자치 원리가 적용되는 민간조직화하고, 상위법에 근거 없는 인사청문회 실시조례를 무효로 확정한 2004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도 부정하는 편법 조치이다.


그래도 청문회를 굳이 하고 싶다면 임명 전이 아니라 임명 후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청문회는 원래 행정기관이 어떤 불이익처분하기 전에 상대방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이다. 공무원을 징계할 때 징계위원회에서 미리 진술을 듣고 양정(量定)을 결정`처분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무직공무원은 징계대상이 아니라서 소명할 기회조차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국회가 해임을 건의하거나 탄핵소추할 때 인사청문회를 열어 입장을 들어보고 표결한다면 행정법 논리에 맞고 헌법 정신에도 부합된다.


요컨대 인사청문회 문제를 해결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국회가 청문회 관련법을 자진 폐지하거나 헌법재판소가 위헌 심판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품격 있는 선진 민주국가로 가는 전환점이다. 그러면서 입법 공백상태인 정무직공무원에 대한 결격요건을 마련하고, 임명동의와 선출 직위에 한해 인사청문회를 하더라도 후보자와 가족 등의 인권을 보호하며 국익에도 지장이 없도록 도덕성 검증의 비공개 등 운영상 미비점을 보완해 나가면 된다.


<매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1055&yy=2015#axzz3bmE5UN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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