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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은 北韓만 보려는 사람들김태효 | 2015.02.24 | N0.14

김태효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前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北이 정상회담 개최하자며 뒷돈 요구한 내용 폭로되자
각계 퍼진 從北 세력은 또 '절대 아닐 것'이라 반박해
새로운 事實 국민 수용 여부 앞으로 南北 관계 좌우할 것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다. 하나는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고, 또 하나는 알고 있다는 확신에 더하여 남들에게 설명해 납득시킬 수 있는 지식이다.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음을 인지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만이 진짜 지식이다. 세상에는 확신으로만 가득 차 거짓과 허구를 진실인 양 호도하려는 사람이 많다.


정부가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국제합동조사단의 결론을 발표하고 5·24 조치를 단행했을 때 북한이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며 각종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과 핵개발에 쓰일 수 있는 지원 대신 북한 주민의 민생에 보탬이 되는 물자와 장마당을 지원하겠다는 대북 정책을 대결적 강경책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북한이 우리 공공기관을 수시로 해킹하고 무인 항공기를 수도권 깊숙이 날려 보내도 북한 소행이라는 확증이 있느냐며 따지듯이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소수이지만 잘 조직된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친위부대들이 활동하고 있다. 개방된 민주주의 제도를 한껏 악용하여 방종을 권리라 주장하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자들이다. 이들은 어찌하여 거짓 선동을 하면서도 그리도 당당한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해 공산 소비에트 연방국가를 창설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계급투쟁 혁명을 위한 거짓말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혁명 주도 세력의 적극적인 의무이자 선(善)"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하물며 북한은 더욱 그러하다. 3대(代)에 걸쳐 70년 가까이 독점 권력을 누려온 집단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열망의 수준을 뛰어넘어 존재의 수단이자 이유 그 자체다. 나아가 남한 사회를 흔들고 무력화해 손아귀에 넣고자 수행하는 거짓 선동은 북한에 완성된 권력을 우리 사회에까지 확장시키는 권력투쟁의 정당한 도구가 되는 셈이다.


5100여만 남한 인구 중 핵심적 종북 좌파 세력은 수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정계·학계·언론계·예술계·종교계 등을 망라한 분야에서 기획된 메시지를 전파하고 각인하고자 확성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8년부터 본격화된 대북 햇볕정책은 '남북 대화는 곧 미덕이요 정상회담은 그중에서도 최고 결실'이라는 가설을 집요하게 정당화했다. 대화는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대화를 포함한 모든 대남 정책을 권력투쟁의 도구로 삼는 북한 정권을 상대로는 우리가 원하는 합의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치밀한 대화 전략이 필요하다.


2000년과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정권의 주민 통제력과 대남 위협 능력을 강화해 주는 한편 남북 대화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환상을 우리 국민에게 각인했다. 북한 지도부는 남한의 어떤 정부라도 국민의 반짝 인기를 차지하고자 남북 대화에 목말라할 것인 양 착각하며 뒷거래를 요구해 왔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북한 정권이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제안하면서 막대한 현금과 전략 물자를 요구해 왔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북한은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계속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라의 근간을 흔들려는 거짓 선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우리 국민의 몫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 믿음과 상치되는 새로운 경험이나 정보를 접할 경우 기존 신념을 버리고 새로운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대신 이를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이러한 행동을 인지부조화이론(認知不調和理論·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으로 설명했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기피하는가 하면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에 애써 기대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종말론을 믿는 신도들을 관찰한 결과 교주가 예언한 종말 일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종말론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앞으로 남북 관계는 새로이 알게 된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에 우리 국민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과거의 믿음을 바꾸는 데 따르는 심리적 고통을 흔쾌히 받아들이려면 겸허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하나둘 모이면 결국 정부의 생각과 정책도 바꾸게 하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2/20150222025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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