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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노믹스 새로 시작하자이종화 | 2015.01.12 | N0.6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


지난 2년간 주가가 두 배로 오르고 환율이 절반 이상 올랐다.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고 수출도 상승세다. 새로운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물론 일본의 이야기다.


지난 20년의 경기 침체와 물가 하락을 금융 완화, 재정 확대, 구조개혁 세 개의 화살로 돌파하려는 아베노믹스가 한창이다. 지난해 4월 소비세율 인상 후 잠시 주춤했지만 12월의 중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재신임을 받고 본격적인 구조개혁 조치들이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늘어난 통화량과 정부부채로 금융위기, 재정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비관론도 크다. 그러나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 대처의 대처리즘처럼 아베 신조 총리가 자기 이름을 경제 정책에 걸고 위험한 길을 과감하게 가면서 국민 여론과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제 세계가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가 많은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이나 전문가들의 공감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 목표, 즉 ‘근혜노믹스’의 실체가 아직도 모호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4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경제 부흥’을 내세우고 창조경제·경제민주화·민생경제의 3대 전략과 42개 세부 과제를 제시했다. 지난해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았고 다시 경기 부양책인 ‘초이노믹스’가 있었으며 규제 완화와 노동, 교육, 공공기관 등의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단기적인 정책과 장기적인 과제의 우선순위가 불명확하다. 가장 중심적인 경제 전략인 창조경제는 정부와 민간이 할 일이 혼재돼 있고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분담과 협력방안도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다시 한번 창조경제라는 큰 틀과 개혁조치들을 중심으로 재정비되었으면 한다. 창조경제의 핵심을 문화·예술 산업이나 정보통신기술 중심의 융·복합 산업을 정부가 육성하는 것으로 보면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나온 신성장이론에 의하면 한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기업의 대규모 투자나 선진국 기술의 모방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지식의 발전을 통해 가능하다. 컴퓨터·인터넷·로봇·신에너지·3D 프린팅 등의 연구개발 투자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지적재산권 보호, 금융 발전 등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주체들의 균등한 기회와 참여를 보장하는 포용적인 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국민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분배와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를 갖춘 성장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창의력 있는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교육제도를 개선하고 창업가들이 대기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에서 만난 신성장이론의 대가인 뉴욕대 폴 로머 교수는 한국의 재벌 중심 산업구조가 새로운 창업가들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지, 학업 성적 위주인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에는 미흡하지 않는지 물었다. 쉽게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수학·과학의 영재들이 의대에 가서 성형외과 의사가 되길 꿈꾸는 나라에서 빌 게이츠같이 창의력 있는 인재들이 나오기 어렵다. 의사가 아니라 의료산업과 컴퓨터를 결합해 연구하는 공학자, 창업하는 기업가들이 나와야 한다. 로머 교수는 한국같이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창의력 시험을 만들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는데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와 무역규모 8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선도적인 기술, 창의적인 아이디어 분야에서 우리는 크게 미흡하다.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발표한 국제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은 종합 경쟁력에서 26위, 일본은 6위였다. 과학자·공학자의 가용 정도에서는 42위(일본 3위)로 크게 뒤처졌다. 제대로 된 인재 양성과 더 나은 제도를 구축해 앞으로의 30년을 준비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큰 축이었으면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낮이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밤까지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했다. 아베 정부처럼 박근혜 정부도 아직 한창 낮이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정책의 큰 줄기를 챙겨서 업적을 내야 한다. 그래야 3년 후에 뿌듯하게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890871&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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