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다스 변호사비를 대신 내주려고 삼성에서 뇌물을 받겠어요? 다스가 돈이 없는 회사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항소심이 끝나고 며칠 후 MB를 접견한 자리였다.
“그리고 또 이건 뭐에요? 일국의 대통령이 어디 법률자문을 받을 데가 없어서 그런 짓을 했겠어요? 없는 죄를 만들어도 말이 되게 만들어야지! 허 참!”
삼성뇌물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유죄판결 취지를 설명드리자 MB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말문이 막힌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재판부의 판결은 법률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MB가 삼성으로부터 두 가지 방식으로 약 89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중 MB에게 전달된 돈은 단 한 푼도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먼저 2009년 1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다스가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AkinGump)에 지급해야 할 약 38억원의 변호사비용을 삼성이 대납했다며 제3자뇌물죄를 적용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다스는 변호사비를 아까워할 정도로 쪼들리는 회사가 아니다. 이익이 너무 나서 현대자동차가 납품단가를 깎을까봐 고민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다스는 다양한 분식회계를 통해 매년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장부상 이익을 축소했다.
그런 다스의 변호사비용을 대신 내주기 위해 MB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다. 그것도 꼬박꼬박 에이킨검프가 인보이스를 발행해 삼성에 변호사비용을 청구하고, 삼성은 공개된 회계장부에 기록을 남기는 식으로 뇌물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익이 된다고 MB가 그런 식으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검찰과 사법부의 주장처럼 다스가 MB 것이라고 가정해도 그런 식으로 뇌물을 받는 것은 MB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이 변호사비용을 대납한 만큼 다스의 이익은 늘어나겠지만, 그 이익이 MB에게 연결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다스는 이익이 늘어난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의 변호사비용 대납으로 38억원의 이익이 증가했다면, 다스는 10억원 가까운 돈을 법인세로 납부해야 한다. 거기다 세금 내고 남은 돈을 배당받는다면 4억원이 넘는 돈을 또 배당세로 내야 한다. 결국 사법부의 판단대로라면 MB는 삼성으로부터 38억원의 뇌물을 받으면서 14억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무슨 뇌물을 세금 내면서 받는다는 말인가!
리스크도 크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미국 소송 당시 다스 내부에서는 다스가 변호사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한다. 이 내용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삼성 회계장부에도 뇌물 공여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기업에 오래 있었지만, 재벌회사가 뇌물 주면서 공개된 회계장부에 꼬박꼬박 기록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MB가 하는 말이다. MB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고자 했다면 은밀한 방식으로 현금을 직접 수령하면 그만이다.
MB는 군사정부 시절부터 재벌기업 CEO를 역임했다. 그런 MB가 세금까지 내며 공개된 방식으로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뇌물을 받을 이유는 없다. 재판부 판결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삼성 뇌물 판결 내역.
또한 사법부는 다스 변호사비용과는 별개로 2008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MB가 에이킨검프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삼성으로부터 뇌물로 제공받았고, MB는 그 권리를 한미FTA 체결 등을 위해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현금을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뇌물로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이 생소한 개념은 유죄를 내릴 수 없는 사건을 유죄로 판결하기 위해 사법부가 논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삼성은 에이킨검프와 계약하고 매월 12만5000달러씩 송금했다. 청와대 총무기획관이던 김백준은 2009년 10월 에이킨검프 변호사 김석한이 찾아와 “이 돈에서 다스 미국 소송 변호사비용을 조달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같은 김백준의 진술을 근거로 이 돈이 삼성이 MB에게 공여한 뇌물이라고 보고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내용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계약하고 지급한 돈이 어떻게 MB에 대한 뇌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검찰은 재판에서 이 같은 의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문제를 제기한 판사가 발령나면서 재판 도중 재판부가 바뀌기도 했다.
바뀐 재판부는 재판 도중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삼성이 MB에게 공여한 뇌물은 에이킨검프에 매월 12만5000달러씩 송금한 돈이 아니라, MB가 에이킨검프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와 기회라는 논리다. MB는 그 권리를 이용해 다스 소송 및 한미FTA 체결을 위한 법률자문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공소장을 변경했다. 문제는 재판부가 만들어낸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할 증거는 검찰 수사기록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 대부분은 오히려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와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재판 과정에서 이 돈이 다스 미국 소송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다스 변호사비용은 별도로 충당된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돈의 용도로 유일하게 남은 것은 김석한이 MB에게 제공한 한미FTA 관련 보고서 몇 장이 전부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자신들이 제시한 논리로 무리하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국가예산이 300조원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가 주요정책에 대한 법률자문을 받기 위해 재벌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삼성뇌물 사건은 MB 재판의 여러 사건 중 가장 치열한 공방이 진행됐던 사건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재판부가 이처럼 황당한 판결을 내렸는지 그 전말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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