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재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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㉑ 김희중-檢, 8시간 '밀담'의 내막강훈 | 2023.01.13 | N0.5
2018년 1월 12일, 서울중앙지검 1146호 검사실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 7시 50분께,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희중이 자수서 한 장을 들고 검찰에 출석했다. 자수서의 요지는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일자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원세훈 국정원장의 연락을 받고 국정원 직원을 만나, 달러로 추정되는 내용물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받아 청와대 관저 근무 직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바로 조사를 시작하지 않고 그날 오전 9시 21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김희중을 면담했다. 그리곤 김희중으로부터 자필진술서 한 장을 더 받아냈다. 김희중은 이 자필진술서에서 쇼핑백 전달 시기에 대해 ‘VIP(대통령)의 해외 순방 전이었다’고 시기를 구체화 했다.

김희중의 새로운 진술서로도 쇼핑백을 전달한 시기를 특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2011년 한 해 동안 MB가 12번의 해외순방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사는 점심식사 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다시 김희중을 면담했다.

그 결과 김희중은 또 하나의 자필진술서를 작성했다. 김희중의 2장짜리 새로운 자필진술서에는 쇼핑백을 전달한 시기가 ‘2011년 10월 11일에 있었던 MB의 미국 국빈방문 며칠 전’이라고 특정됐다. 이날 있었던 검사와 김희중의 면담내용은 수사기록에 나와있지 않았다.

정리를 하면 김희중은 이날 검찰조사도 받기 전 8시간 동안 검사와 면담을 하여 2차례나 진술을 번복했다. 쇼핑백 전달시기에 대해 ▲자수서에서는 일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가, ▲1차 진술서에는 MB의 해외순방 전으로 번복했고, 다시 ▲2차 진술서에는 2011년 10월 MB의 방미 전이라고 일자를 특정했다.


▲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자수서를 들고 검찰조사에 응했지만 검사와 면담한 뒤 2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김 전 부속실장의 자수서, 1차 2차 진술서.

자필진술서 작성을 마친 김희중은 그날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검찰조사를 받았다.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진술서에는 쇼핑백을 전달한 시기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김희중은 그 어떤 고민도 없이 'MB의 2011년 10월 국빈방문 며칠 전'으로 못 박았다.

통상 검찰조사를 받다보면 진술인의 진술내용이 번복되는 일이 있다. 조사과정에서 검사가 증거자료나 다른 사람의 진술내용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진술이 번복되는 경우다. 그러나 김희중은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이 자수서의 내용을 번복해 진술했다.

이상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김희중은 자수서에 ‘달러로 추정되는 내용물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썼다. 형태나 무게 등으로 볼 때 달러로 추정되지만, 내용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는 진술이다.

그런데 이날 검찰조사에서 김희중은 “원세훈 원장이 저에게 연락하여 ‘VIP 해외 순방 시 달러가 필요할 수 있으니 직원을 통해 보내겠다. 대통령께 전달해달라’라고 얘기를 하였기에 달러라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쇼핑백 내용물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황당한 진술은 계속 이어졌다. 김희중은 그렇게 받은 쇼핑백을 청와대 관저 근무자에게 건네면서 뜬금없이 ‘MB가 아닌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원세훈이 MB에게 전달하라고 했는데, 자신의 판단엔 김윤옥 여사가 쓸 돈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김희중은 그렇게 판단한 이유에 대해 “2011년경 경호처 직원들한테 듣기로는 김윤옥 여사가 해외에 나가면 캐리어에 명품을 가득 담을 정도로 쇼핑을 한다고 걱정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그 같이 일을 처리했다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정상적 검찰조사라면 이런 경우 검사는 김희중에게 그런 말을 전한 경호처 직원이 누군지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추가진술을 받아내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해야 한다. 그러나 검사는 그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조사를 끝냈다.


▲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국정원 특활비를 'MB가 아닌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2018년 1월 12일, 김희중이 오전 7시 50분에 검찰에 출두해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이어지는 사건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김희중이 검찰조사를 받은 직후부터 인터넷에선 7년 전 미국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캡처한 사진이 떠돌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MB의 미국 국빈방문 당시 미국에 있는 아는 언니가 ‘니먼마커스’ 백화점에서 김윤옥 여사를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에는 ‘니먼마커스가 명품 의류만 파는 백화점’이라며, 김윤옥 여사가 명품쇼핑을 했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명백한 가짜뉴스였다. 니먼마커스는 한국의 여느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명품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도 함께 파는 백화점이었다.

니먼마커스에서 김윤옥 여사가 쇼핑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만으로 명품쇼핑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김윤옥 여사가 MB의 미국 국빈방문 당시 명품쇼핑을 했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미국순방 중 김윤옥 여사는 니먼마커스가 있는 쇼핑몰에 들려 손주들 옷 몇벌을 산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는 각 웹사이트와 SNS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리곤 여당이 나섰다. 2018년 1월 18일 박홍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당 회의에서 “김희중의 검찰진술 내용을 제보 받았다”며 “김희중은 국정원 특활비가 2011년 방미를 앞둔 김윤옥 여사 측에 전달됐고, 이것이 사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도 그날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원 특활비로 김윤옥 여사가 미국 출장 때 명품을 사는데 썼다”고 주장했다.


▲ 미국 백화점 '니먼마커스'에서 김윤옥 여사를 봤다는 인터넷 목격담 내용.

이후 검찰은 MB가 2011년 미국 방문 직전 원세훈으로부터 국정원 자금 10만 달러를 뇌물로 수수했다며 기소했다. MB의 국정원 자금 4차 수수 혐의다. 김윤옥 여사는 박홍근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사건은 검찰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김희중의 이해 못할 진술 이후 관련 내용에 대해 인터넷에서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여당 의원들까지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나선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2018년 1월 12일, 김희중이 검사와 가진 8시간의 면담에 그 답이 숨어 있다고 본다.

MB의 국정원 자금 4차 수수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MB정부 시절 남북 간에 있었던 정상회담 논의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북한은 MB정부 당시 중국 총리 원자바오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 왔다. 세습을 앞두고 경제난에 몰린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MB는 북한의 제안에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정상회담 성사를 대가로 한 대북지원은 없으며, 정상회담 의제에 북핵문제가 포함돼야 하고, 이전 정상회담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북송 등이 이뤄졌으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국군포로 송환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 2009년 11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북측과 비공식 접촉을 했다. 이후 남한의 통일부와 북한의 통일전선부 간의 이른바 '통-통 회담'이 진행됐으나 결렬됐다. MB가 정한 원칙을 북측에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북한 내부에서 권력구도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북한을 장악하고 있던 김정일 측근 세력과 권력암투를 벌이면서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

MB정부는 5.24 조치로 북한의 돈줄을 말리고,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중국·러시아의 대북지원조차 차단해버렸다. 김정일은 당시 아픈 몸을 이끌고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지원재개를 요청하는 한편, 남한에 대해서는 원자바오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제안해왔다. 이에 MB는 기존의 원칙 이외에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정상회담 성사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2회 서해수호의날을 하루 앞둔 2017년 3월23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아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2010년 6월엔 북한의 보위부가 국정원과 접촉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달 국정원 고위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해 천안함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에 북한은 “동족으로서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MB정부는 천안함 폭침의 주체가 북한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시 북한의 신진세력은 연평도 포격을 일으키고, 김정일은 그 직후인 2010년 12월 5일 보위부 고위급 인사를 남한으로 파견했다. 천안함 폭침 사과문에 대한 문구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지만 북측 인사가 북한으로 돌아간 후 처형을 당하면서 보위부와 국정원 간의 접촉도 결렬됐다.

2011년 들어 북한은 유엔 주재 북한대사를 통해 우리 외교부 쪽으로 다시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 결렬되자 북한은 청와대의 명확한 입장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로 인해 2011년 5월 청와대 고위급 인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원세훈은 대북접촉비용으로 김희중을 통해 10만 달러를 청와대로 보낸 것이다. 원세훈은 검찰조사에서 이 비용의 구체적 용처까지도 밝혔지만 생략한다.

베이징 회담이 결렬되게 된 계기는 2011년 5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한중일 정상회의였다. 당시 원자바오는 MB에게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권유했다. 이에 대해 MB가 베이징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과문 문구을 놓고 남북 실무자들이 조율 중이라는 점을 밝혔다.

중국으로 돌아간 원자바오는 김정일을 만나 MB로부터 들은 사실을 전했다. 이에 김정일은 불같이 화를 내며 북한으로 돌아갔다. 천안함 폭침을 부인해 온 김정일의 입장에서 중국 정상으로부터 사과문 작성 얘기를 들었으니 참지 못한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김정일은 북한에 전화를 해 베이징 접촉 인사들을 모두 총살해 버리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베이징 접촉 인사들 “남한의 청와대 인사가 베이징에서 자기들에게 돈봉투를 내밀며 천안함 폭침 사과와 남북정상회담을 요구했다”고 거짓폭로를 해 버렸다. 이른바 ‘돈봉투 사건’이었다.

이처럼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건네진 10만 달러는 2011년 10월이 아닌 5월에 청와대 인사의 대북접촉비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자금이 건네진 시기가 MB의 해외순방 전이라면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한 방일 전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MB 역시 원세훈과 마찬가지로 2011년 국정원으로부터 전달받은 10만 달러는 대북 접촉 비용으로 사용됐다고 명확히 진술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국정원 자금이 전달된 2011년 10월에는 청와대의 대북접촉이 없었다”며, “따라서 이 돈은 MB가 사적으로 사용한 뇌물수수”라고 판결을 내렸다.

황당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특활비 4차 수수 사건의 쟁점은 자금 전달 시기가 2011년 10월이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10월이라는 유일한 근거는 김희중의 진술뿐이었고, 따라서 법정쟁점은 김희중 진술의 신빙성 문제였다.

변호인단은 김희중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음을 충분히 입증했다. 정상적 재판부라면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김희중 진술의 신빙성을 왜 인정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김희중 진술을 기정사실화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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