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나는 시간
HOME > 함께 만드는 이슈 > 다시 생각나는 시간
더반 대첩,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관리자 | 2017.07.06 | N0.27


6년 전 오늘은 강원도 평창이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날입니다. 평창은 2003년 체코,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차례 실패했습니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을 한다고 나섰을 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IOC 역사상 올림픽 유치에 세 번째 도전해서 성공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평창에는 전임 정부가 1조원에 달하는 시설을 투자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유치를 포기할 경우 ‘알펜시아’ 등 많은 시설이 쓸모없이 버려질 가능성이 컸죠. 이명박 대통령은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이미 투자된 시설을 보다 가치 있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2009년 6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승인합니다. 9월에는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공동 위원장을 맡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출범을 합니다. 비자금 의혹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IOC 위원 자격이 정지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사면으로 복귀시켜 진용을 완성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은 야권의 반대로 정치적 부담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힘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경제인은 모두 제외하고 이건희 회장 한 사람만을 사면합니다. 이른바 ‘원 포인트 사면’으로 IOC 위원으로 복귀한 이건희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년 반 동안 11차례 해외 출장을 강행하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았습니다.

2011년 7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출입문에 평창동계올림픽 엠블럼이 부착된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에 탑승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더반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은 총회가 열리는 6일까지 하루에 10명이 넘는 IOC 위원들을 만나는 한편, 남는 시간은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는 강행군을 펼쳤습니다.

당시 우리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의 제목은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었습니다. 2011년 7월 6일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습니다. 나승연 대변인, 조양호 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김연아 선수, 문대성 IOC 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토비존슨 선수의 순서로 이어진 후 나승연 대변인이 마무리를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동안의 노력과 열망을 담아 혼신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에 임했습니다. 후일 언론에서 ‘더반 대첩’이라고 칭해졌던 이날 프레젠테이션은 IOC 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IOC 위원들의 투표가 끝난 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외칩니다.

1차 투표에서 총 95표 중 우리는 63표를 획득했고, 경합을 벌인 독일 뮌헨은 25표, 프랑스 안시는 7표에 그쳤습니다. 당시 우리가 예상한 표가 48표~64표였으니 최대치에 육박한 득표였습니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이건희 회장도 울먹이며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서 만든 겁니다. 평창 유치팀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오셔서 전체 분위기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이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조그만 부분만 담당했을 뿐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너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하신 분들이 많은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자꾸 눈물이 납니다. 경기는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평창 홍보대사는 국가적인 일이기 때문에 나 한사람 때문에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