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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디트로이트로 흐르는가최중경 | 2016.09.11 | N0.159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 전 지식경제부 장관>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는 문제가 강성 노조와 포퓰리즘 정치, 그리고 황제 경영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GM이 "한국은 더는 산업경쟁력이 없다"고 이례적으로 공개 발언을 했다. "세계에 있는 GM 공장 중 해마다 임금 협상을 하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했다. 수출경쟁력이 날로 떨어져 짙은 암운이 드리운 가운데 3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대기업의 노조가 "주식과 부동산을 팔아서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기막힌 주장을 폈다. 대선 잠룡들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을 말하는 대신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앞다퉈 수출경쟁력을 깎아 먹는 선심 발언을 쏟아낸다. `사회적 경제`, `무역이익공유제`와 같이 시장경제에 반하는 개념들을 자칭 보수 정치인들이 앞장서 전파해 포퓰리즘을 증폭시킨다. 포퓰리즘은 나라 재정을 결딴내고 경제를 망가뜨리지만, 포퓰리즘의 포장물은 늘 공정, 평등, 사회정의 등 현란한 수사로 채색되어 있어 나서서 반대하기 어렵다. 국민도 당장 입에 다니 심각한 고민 없이 받아들인다.


해운산업의 실패는 세계 경기의 침체에서 비롯되었지만 비전문가 재벌가족이 경영 전면에 나선 황제 경영도 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인, 노조 지도자, 황제 경영인들을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로 단체 견학을 보내야 한다. 폐허가 되어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에 서서 산업경쟁력을 잃은 결과가 무엇인지 두 눈 부릅뜨고 보면 `기업 부담을 늘려서 국민께 이것저것 해드린다`는 말을 못 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할 중책을 맡기는 황제 경영을 되돌아볼 것이다. 노조 지도자들도 디트로이트의 어제와 오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노동운동은 상생을 위한 합리적인 모색이지 공멸을 향한 무분별한 쟁취가 아니다. 이 어려운 때 파업을 강행하고 무리한 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는 시대착오, 상황 무시,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경영자를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팀의 리더`로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의 물꼬를 터서 산업경쟁력을 지키는 길에 노조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 폐허가 한국은 비켜가리라고 보는가? 40년 전에 대한민국 세계지리 교과서에 묘사된 디트로이트를 기억해 보라. 산업의 중심으로 번성하던 그때의 모습과 현재의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 폐허가 연결되지 않는다.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한강의 기적이 폐허로 바뀌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 폐허가 웅변한다.


산업이 무너지면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나가 저급한 일자리를 놓고 밥을 먹기 위해 투쟁할 것이며 빈집들이 늘어나고 텅 빈 마을들이 생겨날 것이다. 선심 정치인, 강성 노조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망가뜨려야 하는 숨겨진 이유`가 없다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황제 경영인도 의사결정 실패 가능성만 키우는 가족 중심 경영방식을 내려놓고 전문경영인, 종업원, 사업파트너와 동고동락하며 위기 타개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산업이 극한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일본산 기계의 가격이 국산보다 싸고, 한 수 아래로 보았던 중국산 휴대폰 배터리의 품질이 국내 제일의 대기업이 생산한 제품보다 우수한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찌 감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11년 가을 디트로이트 교외 주택가 폐허에서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섭도록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서둘러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호의 침몰은 시간문제이다. 해운업과 조선업이 겪고 있는 참담한 상황이 다른 주력산업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서둘러 특단의 산업경쟁력 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의 경제 기적이 역사에서 지워질 위기를 마주하고도 선심 정치인, 강성 노조 지도자, 황제 경영인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내려질 역사의 응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6&no=64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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