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OECD 34개국중 채택 안한 국가는 한국, 아이슬란드뿐
장시간 근로 줄이고 개인 역량 키우는 촉매로 활용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하지만 성인들의 역량은 의외로 취약하다. 특히 35세 이후 중장년층은 OECD 평균보다 역량이 뒤처지고, 나이가 들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노동생산성이 OECD 하위권을 맴돌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교본을 익히고 지침을 따르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창의력은 빈약하다. 지시사항은 충실히 이행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거나 참신한 대안을 만들지는 못한다. 윗사람의 결심을 구하고, 선례를 뒤적이고, 다른 기관은 어떻게 하는지 살피더라도 어떻게 하면 책임을 면할까에 방점을 둔다.
인적 역량이 낙후된 원인은 세 가지다. 학습동기가 미흡한 주입식 교육, 위계질서 중심의 조직문화와 순환보직, 부실한 평생학습 탓이다. 그 주범은 수박 겉핥기식 ‘표층학습’과 선다형 평가 위주 교육 방식이다. 또 초기 산업화 단계까지는 강점이기도 했던 상명하달, 전례답습의 일하는 방식과 순환보직, 연공서열 시스템도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학창 시절엔 죽어라 공부하지만, 정작 취업한 뒤엔 역량 갱신에 힘을 쏟지 않는다. 국민소득 대비 평생학습 투자 비중이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선 ‘파괴적 기술’의 진전에 따른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는커녕 적응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국민소득 3만 달러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것도 가치 창출에 긴요한 상상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라면서도 선진국 수준으로 살 순 없다. 그걸 바란다면 과욕이다. 시간이 걸려도 기초부터 튼튼히 해서 역량을 키우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교육, 노동, 공공부문의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평생학습은 근로시간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는 OECD에서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길다. 독일보다 연간 753시간, 무려 3개월 넘게 더 일한다.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낮은 점 등을 감안해도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은 반면에 근로 강도와 직무 몰입도는 느슨하다. 생산성을 높이거나 평생학습에 매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장시간 근로는 모든 선진국이 도입한 ‘일광(日光)절약시간제(서머타임)’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뇌관이기도 하다. 요즘은 해 뜨는 시각이 하루 1분씩 앞당겨지고, 해 지는 시각은 1분씩 늦춰진다. 하지와 동지의 일광 시간은 무려 6시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여름철 표준시를 한 시간 앞당겼다.
여름엔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 조명과 냉난방 에너지를 아끼는 한편 바깥 공기와 햇볕을 더 많이 쐬고 쬐어 건강도 돌보자는 취지다. 일광 절약은 범죄를 줄이며, 여가를 늘려 가족 가치 함양과 내수에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자기계발을 촉진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편익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봄철에 시간을 앞당기면 생체 리듬을 깨뜨리며, 수면과 인지능력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년 두 차례 시간 변경이 번거롭고 일상생활에 혼란을 초래하는 데다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늘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일찍 출근해도 일찍 퇴근하기는 어려워 근로시간만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로 노조의 반대가 거세다.
1916년 독일이 처음 도입한 후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일광절약시간제’는 87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34개 OECD 회원국 중 이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아이슬란드뿐이다. 머뭇거리던 일본마저 지난해 7월 전격 시행했다. 북위 65도 부근의 아이슬란드는 한여름 백야(白夜) 현상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보면 우리만 외톨이가 된 셈이다.
대외의존도가 이례적으로 높은 우리 경제가 언제까지 선진국 표준을 외면하고 독자노선을 고집할 수 있을까. 이젠 발상을 바꿔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인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촉매로 일광절약시간제를 활용할 때가 됐다. 육아 부담으로 아침 근무를 꺼리는 사람들에겐 시차 출퇴근제를 확대하면 된다. 다만 일이 곧 학습이기도 한 연구직과 전문직 등에겐 근로시간 적용을 면제하는 유연성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60604/7849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