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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과 모가디슈…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이종화 | 2021.09.16 | N0.488
실패한 국가의 국민은 불안·궁핍해
성공한 국가는 올바른 제도·인재와
국민 단합을 이끄는 지도자 갖춰
평화와 번영은 노력없이 오지 않아


2021년 8월 30일 대혼란 속에 마지막 미군이 카불 공항을 떠났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지원하다가 미국의 공격으로 붕괴한 지 20년 만이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통치가 다시 시작되면서 여성 차별과 인권 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카불의 혼란은 최근 개봉된 영화 ‘모가디슈’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1990년 12월 소말리아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를 점령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을 다뤘다. 소말리아는 1991년 1월 반군이 집권했지만, 내전이 오랫동안 계속됐고 지금도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8월에도 모가디슈의 음식점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미국이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인 알샤하브 근거지를 공습하고 있지만, 치안 부재로 소말리아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4000만 명, 소말리아의 1600만 명 국민은 수십 년 동안 일상적으로 전쟁과 테러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소말리아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310달러, 아프가니스탄은 500달러 정도이다. 한국의 1970년대 초반 수준이다. 한국 경제는 반세기 동안 초고속으로 성장하여 일인당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 됐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는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국민의 생명 보호와 빈곤 해소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과 유엔이 많은 원조를 쏟아부었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는 안전하고 자유로우면서 번영하는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 아프간 농부는 아편을 밀매하고 소말리아의 어부는 해적이 되었다.

이 두 국가는 왜 실패했는가? 첫째, 올바른 제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역사적으로 성공한 국가는 사유재산권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포용적 제도’를 갖추었다고 했다. 이러한 올바른 제도 아래에서 모든 국민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부를 추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효과적이고 공정한 경제·정치·법 질서 없이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는 제대로 된 행정 조직, 치안력, 법원 등을 갖추지 못했다. 지배층이 부패하고 재산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약탈적 제도’에 실망한 국민은 도리어 반군과 극단주의 종교단체를 지원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올바른 자본주의 제도를 구축했다. 재산권과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고 법 질서를 유지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둘째,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 국가는 실패한다. 국가를 건설하는 초기에는 외국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자국의 인재를 키워야 한다. 언제 테러로 죽을지 몰라 불안하고 어린아이들이 책 대신 총을 들어야 하는 국가에서 제대로 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인재가 클 수 없다. 영화 ‘모가디슈’에는 어린아이들에게 마약 성분이 있는 나뭇잎을 씹게 하여 환각 상태에서 총을 쥐여 주는 참혹한 현실이 나온다. 실패한 국가는 국민에게 기초 교육의 기회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소말리아는 2007년 초등학교 취학률이 23%였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에서 초등학교 취학률이 20%였다가 2001년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90% 이상으로 급상승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재집권한 현재 여성의 교육 기회는 다시 침해를 받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건국 후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법으로 시행했다.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중등·고등 교육을 확대하면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셋째, 국가가 성공하려면,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국가가 융성할 때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지도자는 국민의 힘을 모아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경제 번영을 이룩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부족과 종교, 문화, 이념이 얽혀 오랜 기간 분열됐다. 소말리아도 권력을 쟁취하려는 군벌 간에 무력 다툼이 계속됐다. 두 국가 모두 제대로 된 중앙집권 정부를 건설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이끌 지도자가 없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고비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극복했다.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정치·경제·사회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평화와 번영은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는 많은 원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역량을 키우지 못해 실패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성장의 동력이 떨어지고 계층·이념·세대·성별 갈등이 심해졌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을 편 가르고 국가 발전보다는 자신과 지지세력의 이익만을 챙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제 정세는 불안정하고 팬데믹, 고령화, 저출산, 청년실업, 분배 악화 등 난제가 널렸다. 다시 국가를 건설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13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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