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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정치체제최중경 | 2019.06.25 | N0.388
일자리가 갖는 현실적인 의미는 크다. 경제성장, 복지국가, 자아실현과 같은 관념적인 의미에 앞서 한 가족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기둥이다. 먹고사는 것이 쉽지 않았던 196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동급생의 4분의 1 정도가 점심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운동장에 나가 수돗물을 마시고 끼리끼리 놀다 들어왔다.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내 입에 거미줄 칠 일은 없겠다고 안심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도 가족의 생존을 위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속이고 속다가 파탄에 이르는 두 가족 모습을 그리며 일자리의 치열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인공지능(AI)이 상용화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몸담았던 2014년, 버지니아 동네 슈퍼마켓에 무인판매기가 도입됐다. 시간당 10달러를 받는 25명 수준의 직원이 10명 수준으로 감소하는 것을 지켜보며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 대형 매장에도 무인판매기가 도입되면서 기술혁신의 이름으로 저임금 일자리까지 파괴하기 시작해 크게 걱정된다. 

무인판매기 도입은 IT와 AI 발전에 따른 추세적 변화에 적응한다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 경영진이 최저임금 상승과 주 52시간 근로제도로 인한 경영 압박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식해 무인판매기 도입을 서두르면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식당에서도 주문과 계산을 기계로 하고 손님 스스로 음식을 나르게 하면 음식점에 주방장만 있어도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일본 도쿄에 가면 주방장 1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많이 눈에 띈다. 최저임금 상승과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소규모 식당의 모습을 이른 시일 안에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 틀림없다. 

소득주도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정책수단이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문제 제기도 중요하지만, 경영진의 무인영업시스템 도입 의지를 자극해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곧 소득주도성장 2년의 성적표를 손에 쥐게 된다. 성적이 나쁘게 나왔는데도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한다면 절망하며 다음 정권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집권세력의 무능을 탓하며 변화를 강력히 주문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능을 탓하며 정권을 희화화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소득 재분배가 성장을 이끈다`는 믿음에 함몰돼 있다고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면 시장경제를 기준으로 `시장 안에 있는 사람`과 `시장 밖에 있는 사람` 숫자가 비슷해지고 종국에는 시장 밖에서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사람 숫자가 더 많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장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 복지정책 재원을 늘려 나가지 않을 수 없고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시장 밖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중앙권력에 힘이 쏠리는 전체주의적 세계관이 힘을 얻게 되고, 일자리를 갖고 있는 소수가 정치적 공세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집권 2년의 경제 운용 성적이 나쁜데도 반성이 없고 정책 전환이 없다면 집권세력이 참담한 경제 성적표를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집권 2년의 실업률 증가, 성장률 저하를 내심 성공으로 평가한다면 집권세력은 이번 기회에 국민 앞에 이념 정체성에 관해 솔직한 고백을 해야 하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책임정치에 임하는 정치인의 기본 윤리다. 집권세력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진솔하게 인정하고 폐기해야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교체한 이유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보아 새로운 설명요원을 구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6/44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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