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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아홉수'신제윤 | 2019.01.21 | N0.361
2019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 돼지 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금년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밝지 않다. 며칠 전 세계은행(W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국 경제에 부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월 중국의 수출과 수입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4%, 7.6%나 줄었다. 우리 경제는 이상하리만큼 `아홉수`에 시달렸다. 1979년에는 10·26 사태라는 정치적 변고에 제2차 오일쇼크까지 겹쳐 경제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1989년에는 비정상적인 자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주식시장이 대폭락을 경험했다. 1999년에는 혹독한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2009년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로 1년 내내 고생했다. 

우리 경제가 `아홉`이라는 숫자에 악운이 생긴 것은 이유가 있었다. 1989년의 `아홉수`는 갑작스러운 호황에 따른 과잉 유동성을 관리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에 따른 일본 엔화의 절상(저달러)으로 우리 수출은 급증했고 저금리와 저유가까지 더해져 예기치 못한 호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3저(低) 현상`으로 무역수지는 최초로 흑자로 전환되었고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경제는 연평균 거의 12%의 높은 성장을 이룩했다. 

문제는 호황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데 있었다.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는 1985년 말 163에서 1988년 말에는 907까지 치솟았다. 1989년 하반기 들어 `3저(低) 현상`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국제수지는 다시 적자로 반전되었고 주식시장은 투매가 일어나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1999년의 `아홉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에 따른 고통이었다. 그 몇 해 전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당시 정부는 기본 거시경제 변수인 환율 조정에 소극적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대신 `생산성 10% 향상 운동`이라는 기이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2009년 우리 경제는 외부 여건에 의해 `아홉수`에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세계경제가 침체되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무리한 경제정책이 나오기 쉽다. 정치적 압력이 심해져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하고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1989년 말 주식시장에서 투매가 일어나자 정부는 무리수를 두었다.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을 무제한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12·12 증시 부양 대책` 효과는 잠시뿐이었고 주가는 다시 하락했다. 이후 주식시장은 상당 기간 장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주식을 매입한 당시 투자신탁회사는 파산 과정을 겪게 된다. 

2009년의 `아홉수`는 기본에 충실한 정책으로 나름 잘 극복한 사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정부는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 될 수 있다며 온 국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약 29조원의 슈퍼 추경을 편성하면서도 공무원 급여는 동결하는 등 정부도 솔선수범했다. 2009년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한 주요 선진국과 달리 0.7%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굴복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해묵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과거 `아홉수`를 야기했던 `10% 생산성 향상운동`이나 `12·12 증시 부양 대책`이 주는 교훈은 강력하다. 어려울수록 임시방편적 방법보다 기본에 충실한 정책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재정 투입을 통한 단기 일자리 창출 같은 단편적인 정책보다 잘 짜인 거시경제정책과 과감한 규제 철폐 등 정통적인 방법이 필요한 때다. 

신제윤 태평양 고문·전 금융위원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9&no=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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