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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정책만으론 한계, 뼈아픈 구조개혁 가속화박재완 | 2014.12.01 | N0.1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


경제가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기대보다 회복세가 더디다. 나름 선방하고 있는 거시지표와 달리 바닥 체감경기는 무척 어렵다고들 한다. 설비투자가 부진한데다 대외 리스크도 만만치 않아서 내년도 경제에 관한 비관론이 늘고 있다.


경제가 지지부진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외적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ㆍ영국ㆍ인도 등은 괜찮은 편이나, 유럽ㆍ중국ㆍ일본과 중동ㆍ러시아ㆍ브라질 등 원자재 수출국은 활력이 떨어졌다. 신흥국들이 유례없는 동반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주요국 총부채가 꾸준히 늘고 있으나, G20 등의 정책공조는 눈에 띠게 약화되었다. 원자재가격의 하향 안정세가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이러한 외풍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오랫동안 쌓여왔거나 앞으로 본격화될 우리의 구조적 난제들이다. 특히 저출산ㆍ고령화 추세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고령화는 이사와 내구재 교체 주기 연장, 안전자산 선호, 사회보험지출 증가, 소비성향 하락 등을 초래해 내수가 위축되고 재정 부담은 가중된다. 금융ㆍ전월세ㆍ교육ㆍ보육부담이 높고, 노후 준비가 부실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점도 걱정스럽다. 일자리 원천인 서비스산업은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영세하고 선진국과 생산성 격차가 커지고 있다.


그밖에도 지나친 화석연료 의존, 큰 정부에 대한 기대와 과도한 정부규제, 열악한 사회자본, 개발연대의 틀에 머문 국정시스템, 북한의 비정상상태 등도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문제점들이다. 최근엔 표심경쟁 끝에 대증요법이 난무하고‘허리띠 졸라매기’는 주저하는 등  정치가 경제를 왜곡하는 부작용까지 두드러지고 있다.


활력을 되살리고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 경로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확장정책기조로 내수 활성화를 뒷받침하고 민생 안정과 경제 혁신을 도모하겠다고 한다. 합리적인 정책조합이다. 다만, 무게 중심을 확장보다 혁신에 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재정ㆍ금융ㆍ통화 확장은 쉽게 경기를 부양하고 한계기업ㆍ가계의 연명을 돕지만,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을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이 따른다. 따라서 정말 어려울 때에만 일시적으로, 적기에, 목표를 잘 겨냥해 맞춤형으로 시행해야 한다. 구조적 난제들은 단기요법이나 수요 촉진보다 구조조정과 공급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극복해야 한다. 규제를 줄이고 노사관계와 서비스산업을 선진화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교육시스템을 갱신하고‘일하는 복지’를 확립해야 한다.


물론 구조개혁은 고통스럽고 저항이 거세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실행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나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다. 개혁정책의 창도(Advocacy)와 공론(Deliberation)을 활성화해 거부세력의 힘을 빼고 인기영합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 2015년은 선거가 없으므로 구조개혁의 적기다.


첫째, 세계표준에 발맞춰 규제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자율ㆍ창의ㆍ융합ㆍ개방ㆍ혁신이 촉진되고 창조경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규제개혁은 돈 안들이고 - 엄밀히 말하면 규제 때문에 파생된 비용을 줄여 -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열 번 성공하더라도 한번 실패하면 당국과 공직자의 책임을 묻는 우리의‘질타문화’도 과잉규제의 원흉이다. 이런 문화에서 공직자들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아예 민간의 손발을 묶고 피난처에 안주하기 십상이다. 규제개혁의 핵심 분야는 서비스업 진입, 수도권 입지, 기업의 출자ㆍ지배구조, 고용ㆍ노동 등 낡은 규제의 성역이다.


흔히 혼동하는 규제와 감독도 구분해야 한다. 규제 수준은 세계표준에 따라 현실화하되, 단속과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옳다. 강화 일변도로 치닫는 안전ㆍ환경ㆍ고용 등 사회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불가피한 규제라도 가급적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테면 대형 마트 의무휴업처럼 일률적인 규제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영업은 언제든 허용하되, 지금의 휴업시간대 판매액에는 부과금을 매기고 그 수입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지원에 쓰는 것이 더 낫다.


둘째, 서비스산업을 개방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제조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진입 문턱과 업역 울타리를 낮추어, 불필요한 지대를 줄여야 한다. 금융회사는 주인을 찾아주고, 금산분리를 완화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하며, 금융투자 규제를 풀어 적극적인 자산 운용과 활발한 창업을 뒷받침해야 한다. 의료ㆍ금융ㆍ유통ㆍ도소매ㆍ사업서비스산업은 소프트웨어 활용도를 높이고 정보통신기술과 융합을 촉진해야 한다. 보건ㆍ의료ㆍ교육산업은 투자를 개방하고 자격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에너지ㆍ철도ㆍ항공ㆍ금융ㆍ우편공기업은 민간 참여를 허용하거나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인적 자원의 양을 늘리고 질도 높여야 한다. 여성 경력 단절 완화, 청년 입직연령 단축에 더해 노인기준과 직역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리고 전문직을 중심으로 이민을 장려해야 한다. 게르만 우월주의가 아직 남아있는 독일도 이민자비율이 13.1%에 달한다. 주요국 중 독일 다음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우리도 전향적 이민정책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


교육시스템의 판 갈이도 시급하다. 개방형 온라인교육(MOOK)과‘역진학습’(Flipped Learning)이 확산되면, 인문사회계 고등교육학제는 1~2년 단축할 수 있다. 초등생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등 소프트웨어 인재를 집중 양성해야 한다.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평생교육과 직업훈련도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출연연구기관의 무력한 지배구조와 취약한 유인체계 역시 개혁 대상이다. 그밖에 기업 인수ㆍ합병 활성화, 배임죄 요건 강화, 연대보증 관행 축소, 개인회생제도 정비 등은 도전ㆍ모험과 개방형 혁신을 북돋울 것이다.


넷째,‘최소보장-자기책임’규율에 따라‘일하는 복지’를 확립하고 고용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복지함정’에서 벗어날 유인을 강화하는 한편, 오래 머무를 경우 불이익을 줘야 한다. 독일 하르츠(Hartz) 개혁과 노르딕 국가들의 사회보장개혁을 좇아 복지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수혜자 선택권을 확대해 서비스 경쟁을 부추겨야 한다.


한꺼번에 불거진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주휴일 근로수당, 임금체계 등 노동 이슈들은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일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합의의 최우선 판단기준은 영세사업장 취약 근로자 보호와 함께 일자리 총량에 미치는 영향이 되어야 한다. 미국에선 최근 고용유연성이 하락해 생산성, 실질임금,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특히 청년과 저학력 근로자가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에서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였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다섯째, 녹색성장 입지를 선점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배출권 거래제 등은‘갈색 빈곤함정’을 회피하는 예방주사이자 미래 먹거리 확보의 디딤돌이다.


끝으로, 재정건전성에 유의해야 한다. 로마, 오스만 터키, 명나라 등 강대국들이 망할 때 보인 공통점의 하나는 누적된 적자였다. 새로운 의무지출은 재원방안을 함께 확정하고, 핵심 선거공약은 그 비용과 재원의 공적 검증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OECD 권고처럼 재정은‘목표 효율’을 높이고, 대학등록금은 수혜자 부담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도록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고 확정부과방식을 완화하는 한편, 자영업자의 신고 유인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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