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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聖域' 되면 경제가 멍든다김대기 | 2018.08.20 | N0.337
아무리 명분 좋아도 파급 효과 무시했다가는 국가적 큰 손실 초래
시민단체와 노조 주도로 정치·이념 개입하며 폐해 커져… 경제 관료들에게 힘 실어줘야


"정책이란 풍선과 같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어디에선가 부풀게 되어있다. 그래서 정책을 추진할 때 한쪽 면만 봐서는 안 된다." 필자가 관료 시절 선배들로부터 귀 따갑게 듣던 말이다. 정책은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파급 효과를 무시하다가 폐해를 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의약분업 시책이다. 약물 오·남용 방지와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좋은 명분에서 시작됐지만 정책 수요자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의약품 판매 수익을 약국에 빼앗기게 된 의료계가 파업 등 강력 반발하니 정부는 의사들을 무마하기 위해 의료수가를 40% 이상 인상해 주었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에 구멍이 뚫렸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당시로선 천문학적 금액인 16조원의 세금이 투입되었다. 한편 의사들 수입이 좋아지니 대학입시에서 의대 지원 붐이 일어났다.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 의대의 인기가 더 좋아졌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자 정부는 이공계 장학금 제도를 만들고 여기에 또 세금을 부어 넣었다.

당시 의약분업은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로 파급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밀어붙이다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하다. 자영업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강행하다가 역풍을 맞았다. 뒤늦게 재정 지원, 카드 수수료와 임대료 인하, 세무조사 유예 등으로 달래보지만 역부족이다. 인구 절벽에, '김영란법'에, 경기 침체에, 금리 인상까지 오면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설 곳이 없다.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나름 명분은 있지만 파급 영향이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이미 수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되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진 것은 차치하고라도 화력발전 확대에 의존하다 보니 미세 먼지 등 환경은 더 악화됐다.

더 큰 걱정은 대학생들의 원자력 전공 기피 현상이다. 수십 년간 키워온 미래 산업이 붕괴되고 안보도 큰 걱정이다. 앞으로 우리 주변국들은 모두 핵무기로 무장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완전 비핵화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은 핵무기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고 기술력도 충분해서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30년 후 원자력 전문가 없이 핵 보유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게 될 우리 처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재정 정책 역시 한쪽만 바라보니 효율이 떨어진다. 선진국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 정책을 펴는 경우 방향은 두 가지다. 재정지출을 확대하거나 감세(減稅)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출을 늘리면서 거꾸로 증세를 하니 정책의 효과가 반감(半減)될 수밖에 없다. 부자 증세이니까 괜찮다고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참 뭐라 말하기 어렵다.

일자리 정책은 더 심각하다. 최근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아우성이지만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정부가 앞장서 인건비를 올리고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리 없다. 반(反)기업 정책을 양산하면서 기업들의 투자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노동계가 야심 차게 추진한 근로시간 단축 역시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 모두가 정책을 한쪽 면만 보고 추진한 결과이다.

유독 현 정부 들어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시민단체나 노조가 정책을 주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대체로 이념 성향이 강하다. 자기 이념에 부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착이 강하지만 전체 경제를 보는 눈은 부족하다. 관료들과 달리 정책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이 이념에 따라 성역화되고 각개약진하다 보니 상충되거나 혹은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경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멍들기 시작한다. 정말로 일자리를 중시한다면 임금 인상보다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고, 기업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근로자 권익이나 공정 사회가 우선순위라면 일자리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지금처럼 형평도 중요하고, 성장도 중요하고, 대기업도 손봐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운영하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환경은 매우 안 좋다. 여기에 정책마저 이념에 막혀 신뢰를 잃으면 민생은 더 나빠진다. 지금 시점에서 정책 기조를 다시 다듬고 경제는 경제 논리로 운영될 수 있도록 경제 관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대기 前 청와대 정책실장·단국대 초빙교수

<조선일보>에 기고한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9/20180819026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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