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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하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나김대기 | 2018.03.01 | N0.310

공무원 伏地不動·사기 저하·구조조정 부진 등 우려돼
'코리아' 이미지도 실추
功過를 고루 평가하고 과거에 대한 司正·처벌보다 미래 향한 제도 개혁으로 가야


 
새 정부 들어 10개월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의 화두는 여전히 '적폐청산'에 쏠려 있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과 문제를 뜻하는 적폐(積弊)를 고치자는 데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폐청산이 지금처럼 일과성 사정(司正) 위주로 나가면 사회 전체에 득(得)보다 실(失)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직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불을 보듯 뻔하다. 복지부동이란 말이 관료 사회에 등장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 공직자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이 이뤄지면서부터다. 당시에는 개인 비리 척결에 중점을 두었음에도 공직 사회가 가라앉았는데, 지금은 비리가 없어도 사정 대상이 되고 있어 더 곤혹스럽다.


정책에 관해 이해가 부족한 민간인들이 공무원들의 과거 업무를 들춰 조사하고, 상부 지시를 받고 일한 선배들이 혼나는 마당에 지금 공직자들이 책임 있게 일하는 걸 기대할 수 있을까. 4대강·해외 자원 개발 같은 국책 사업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공직자를 더 위축시킬 뿐이다.


특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선·자동차는 물론 조만간 금리(金利)가 오를 경우 터져 나올 한계기업 처리 문제를 포함해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직자가 몸을 사리면 성과를 낼 수 없다. 미적거리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닥치면 그것이 곧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적폐 청산은 국가 이미지에도 부정적이다. 적폐 청산 과정에서 우리의 치부(恥部)가 과도하게 드러나서 해외에서 '한국은 품격 없는 나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메인 서버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인들에게 공개되고 역대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된 것만 해도 그렇다. 정보는 신뢰가 생명인데, 앞으로 과연 외국 정보기관이 우리와 흉금을 터놓고 협력할까. 지난 정부에서 이루어진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우리만 손해였다. 국내 정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국가 정상들과 국제 스포츠·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찾아오는 시점에 전직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이 강도 높은 사정을 받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올림픽 유치에 큰 공로자들이고, 좋든 싫든 국제사회에서 한동안 대한민국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림픽 개막식 날 압수수색 당한 이후 수시로 계속 압수수색을 받고 있다. 올림픽을 기업 경영에 적극 활용하려던 롯데그룹 회장은 많은 외빈이 와 있는 가운데 구속되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올림픽 기간 중에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회 분열이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 아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렇게 많이 처벌되는 것은 1987년 민주화 이래 처음 있는 일 같다. 재계 엘리트부터 공직자, 군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국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다. 계속되는 소환과 압수수색, 구속영장으로 사회 전체가 어수선하다.


검찰은 우리나라의 최고 수재(秀才)들이 모인 집단이다. 머리가 좋은 데다가 무소불위의 칼까지 갖고 있으니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헤어나기 어렵다. 이제 그 칼날도 대범해져서 3명의 전직 대통령을 연속으로 겨누는 형세까지 됐다. 통상 3번이면 '관행'이 되었음을 뜻한다.


검찰이 이번에도 성공하면 대한민국에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는 인사가 한 명도 없게 된다. 우리가 이 정도 나라밖에 되지 않는가. 문화혁명을 일으켜 수십만명을 죽이고 중국을 20년 이상 후퇴시킨 마오쩌둥에 대해 덩샤오핑이 "모든 사람은 공(功)과 과(過)가 있다. 과만 갖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너무 대비된다.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 하나하나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경험도 많고 경륜도 쌓인 인재들을 활용하기는커녕 이렇게 내치면 국가에 큰 손실이다. 지금 세계는 대변혁기에 있다. 경제와 안보 환경 변화 모두 메가톤급이다. 상당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등을 돌리고 국민이 분열돼서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적폐 청산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국가가 업그레이드되어야 가치가 있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과거에 대한 사정보다 미래를 위한 제도 개혁으로 가야 한다.


김대기 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8/20180228026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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