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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성장, 기업이 주도해야박병원 | 2017.12.18 | N0.299
이미 공급 과잉인 업종에 창업해봐야 망하기 십상 
애플 신화 재현하기보다 애플에 팔 회사 만들도록 
기업은 스타트업에 돈 대고 정부는 규제 혁파에 힘써야


정부가 '소득 주도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혁신 성장'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니 참 다행한 일이다. 거의 모든 업종이 공급과잉, 과당경쟁에 빠져 있는 만큼 수요가 어지간히 늘어선 새 정부의 최상위 정책 목표인 고용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요가 늘어도 기존 공급 능력을 크게 초과하지 않는 한 새로운 투자와 고용으로까지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 기술, 사업 형태를 만들어내는 혁신 성장이라야 새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해낼 것인가?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청년 창업이나 벤처기업 육성으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고 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는 이유부터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먼저 청년 창업(Start-Up)을 보자.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16년에 15~34세 청년이 사업체 22만6082개를 만들었는데 그중 통신판매업을 포함한 소매업, 요식업, 커피숍 등 이미 공급과잉인 분야가 70%를 웃돈다. 또 2011년 청년 창업 업체 중 23.5%만이 창업 후 2016년까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는 독립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 비중이 25.5%로 다른 선진국보다 두 배나 높고 이런 업종에 밀집돼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엮어서 생각해 보면 이 업종들의 기존 업체가 상당수 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창업은 일자리 면에서 제로섬 게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라고 스티브 잡스(애플)나 마윈(알리바바) 같은 창업자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 가능성은 너무도 낮다. 미국에서도 애플이나 아마존, 페이스북이 없을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제 미국에서 청년 창업의 목표는 애플 같은 거대 기업에 인수합병될 만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중국에서도 청년 창업이 활발하지만 이미 텐센트나 알리바바처럼 되겠다기보다 사업성을 증명해 이들에게 파는 것이 목표다.

벤처기업도 마찬가지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최근 벤처기업의 72%가 B2B 업체이며 대기업 의존형이라고 지적하고, 대기업에 의한 벤처기업의 M&A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비로소 벤처 생태계가 완성된다고 했다. 이런 생태계는 대기업에 의한 M&A가 흔히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난받고, 헐값 매수, 기술 강탈 같은 시비에 휘말려서는 활성화될 수 없다. 기업을 사고파는 것을 국내에서는 하지 말고 실리콘 밸리에 가서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자유롭게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인수합병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어떤 종류의 혁신적 사업은 대기업 아니면 손도 못 대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또는 신약 개발과 같은 대형 기술 개발을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해낼 수는 없다. 전기차는커녕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도 LG 같은 대기업이 20년 이상 거액 적자를 감수하면서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퍼부은 끝에 겨우 성공했다. 스타트업이나 벤처는 요소 기술이나 부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을 뿐이다.

스타트업이나 벤처에 대한 투자 자금도 미국은 99%를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 등 민간이 제공하며, 그 배후에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먼저 성공한 대기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고, 은행, 심지어는 '초대형 IB(투자은행)'까지 혁신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투자 대상을 고를 안목이 있는지, 지극히 낮은 성공률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련 업종의 대기업에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혁신 성장 성공을 위해 더욱 중요한 전제 조건은 규제 개혁이다. 아산나눔재단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해 볼 수가 없다고 한다. 혁신 성장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실정이다. 최근 20여년간 중국은 미국보다 한발 늦게 출발했지만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 미국의 공룡들과 맞먹는 거대 기업을 만들어냈다. 세계 10대 핀테크 기업 중 5곳이 중국 기업이다. 미국이 셋이고, 한국과 일본은 없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할 밑천을 댈 것이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전통 산업에서 중국에 따라잡히는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4차 산업혁명에선 처음부터 중국에 뒤진 현실에 눈앞이 캄캄하다.

먼저 '되는 게 없는' 이 나라를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로 만들어야 혁신 성장이 가능하다. 해 낼 의사와 능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정부가 다짐했지만 모든 정부가 다 실패한 혁신 성장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이 정부만은 성공해 다시 '새' 일자리가 생기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5/20171215030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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