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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어 줄 대통령박병원 | 2017.03.25 | N0.220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해법이 뭔지도 아는 나라가 정작 실천은 하나도 못해"
역대 정권 들어설 때마다 수많은 공약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한 게 뭐 있는가


나라의 명운을 책임질 새 대통령을 뽑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후보 두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했던 분들이어서 그런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대통령 되겠다는 분들이나 대통령을 선택해야 할 국민에게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기억을 되살려본다.


노 대통령 당선인에게 필자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신분으로 취임 첫해의 경제 운용 방향에 대해 보고했다. 그때 "서두르지 말고 임기가 끝날 때쯤 좋은 성과가 나도록 해 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노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받은 과제는 LG필립스가 파주에 첨단 LCD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52만평에 걸린 규제를 다 해결해 주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규제인 수도권 규제에 걸리는 것은 물론 군사 시설도 있었고, 농지·임야 전용 등 허다한 규제가 겹쳐 있었기 때문에 재벌 특혜 시비에 휘말리기 딱 좋았다. 그래도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불가피하니 해 주라고 했다. 이어서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들과 각종 인프라 시설, 다른 LG그룹 계열사들에도 토지 85만평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003년 이후 파주 인구는 80% 증가했다.


골프장에 관해서도 당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운동인 데다 정부 부처 간 의견 대립도 컸지만 노무현 정부 내내 골프장에 대한 겹겹의 규제를 거의 모두 철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지금처럼 골프장이 크게 늘었다.


한·미 FTA를 타결하고 한·EU FTA를 시작한 것이야말로 "반미 좀 하면 안 되는가?"라면서 취임한 노 대통령이 만든 걸작이었다. 2003년 8월 발표한 FTA 구상은 '개도국을 상대로 수출 조금 더 하자'는 FTA에서 탈피해 '세계 최강국을 상대로 수입을 개방해 국내 사업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하겠다'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다. 경쟁력은 오직 시장 경쟁을 통해서만 생긴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선택이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집권한 노 대통령이 우회전한 또 다른 사례가 중소기업 고유 업종 폐지이다. 1979년 23업종으로 시작해 1989년 237업종까지 늘어났던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는 해당 업종에 역량 있는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막고 외국의 대기업들에는 사실상 적용하기 어려운 등 많은 문제가 있어서 계속 업종 수를 줄여 오다가 2007년 완전 폐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제도를 2011년 소위 우파 정권의 동반성장위원회가 "법적으로는 강제하지 않는 민간 협의체를 통한 권고"라면서 재도입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공하지 못한 정책도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때의 주택 200만호 건설 결과 오래 안정됐던 집값이 노무현 대통령 때 다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서 값이 오른다면 수요를 줄이면 될 것 아니냐며 "부동산을 보유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대폭 인상 등 조치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것은 경제 관료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집값 상승은 불로소득과 빈부 격차 확대를 초래해 사회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게다가 높은 땅값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하고, 높은 집값은 임금 상승 요인이 되기도 하는 등 고용 창출에도 경제 운용에도 막대한 지장을 빚는다. 땅값, 집값 안정을 원했던 점에서 목표는 같았다.


필자는 수도권에 토지 공급을 확대하고 대규모 주택 공급을 해야 하며, 세금으로 수요를 억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가 부동산 정책 논의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요 억제책이 시행돼도 집값이 계속 오르자 결국은 임기를 1년여 남겨 놓고 공급 확대로 정책을 전환했다. 그 결과가 2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고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 5년간 집값은 안정됐다.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을 바꾼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세계적 컨설팅사 부즈앨런의 한국 경제 보고서는 '문제가 무엇이고 대책이 무엇인지 이렇게 잘 아는 나라도 처음 보지만, 이렇게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라도 처음 본다'고 하면서 한국을 NATO(No Action, Talk Only·액션은 없고 말만 한다) 국가라고 한 적이 있다. 대단한 공약이나 경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많은 사업이 제안됐지만 실행에 옮겨진 것이 거의 없다. 기업이 하겠다는 투자 사업도 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하면서 일자리 창출은 어불성설이다.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어 줄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4/20170324031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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