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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을 넘어 産政협력으로관리자 | 2017.03.20 | N0.219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지루한 정경유착 논란 중에 대통령이 탄핵되고 4대 재벌이 모두 전경련에서 탈퇴했다. 정경유착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적폐지만 4대 재벌이 모두 전경련에서 탈퇴한 것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이제 정부와 기업 간의 대화채널까지 끊어지는 건 아닌가? 삼성그룹이 대관업무 폐지 방침을 슬며시 흘린 것도 대화 단절의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는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던 1960~1970년대에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발전모델을 `주식회사 대한민국(Korea Incorporation)`이라고 요약해 표현했다. 정부와 기업이 한몸처럼 움직이며 협력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지칭된 산정협력(産政協力) 방식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과 1세대 기업인들의 열정에 힘입어 모두가 회의적이던 중화학공업 기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업의 정치헌금과 정책특혜가 맞교환되는 폐습이 형성되기도 했다. 선진국 문턱에 서서 목을 빼고 기다리는 한국 경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정부와 기업 간의 건전한 대화와 협력까지 끊어지면 안 된다.


자본주의 종주국이자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정부와 기업은 끊임없이 대화하며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정부가 기업의 애로를 타개하는 데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MB정부에 몸담고 있던 시절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방문했을 때 한 미국 기업이 한국 공기업의 입찰과정에 참여했다 탈락한 사실을 거론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던 경험이 있다. 한국 경제가 보다 성숙한 모습을 갖추려면 정경유착을 넘어 산정협력의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산정협력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많다. 대표적으로 연구개발(R&A)과 국가 간 산업협력을 들 수 있다. 특정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들에 공통으로 필요한 연구개발과제는 정부가 연구해서 연구 결과를 모든 기업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개별 기업들이 모두 동일한 연구개발에 뛰어들면 중복 지출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정부가 나서서 시장조사를 하고 법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상대국과 투자보장협정을 맺으면 개별 기업들이 부담할 비용과 위험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정부가 위험분담(Risk-sharing)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때로는 위험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옛말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정경유착의 우려가 있다 해도 정부와 기업 간 대화채널은 유지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는 건설적이고 건전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화채널을 정형화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전경련이 그동안 여러 문제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경련이 산정협력의 대화창구로서 수행해온 순기능까지 부정하는 것은 결코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다. 엄격한 잣대를 써서 전경련의 행위규범(Code of Conduct)을 제대로 만들고 준수하도록 하면 된다.


이 시점에서 전경련 해체를 논하는 것은 재난구조가 미흡하였다 해서 해양경찰 해체를 결정한 것과 같은 과잉대응에 속한다.


4대 재벌이 전경련을 탈퇴한 것은 각자 나름의 고차원적 계산이 있었겠지만, `명쾌한 수학 문제 풀이에서 느껴지는 매끈함`이 보이지는 않는다. 왠지 `억지로 꿰맞춰 놓은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대할 때 엄습하는 짜증` 같은 게 느껴진다.


4대 재벌은 적절한 시점에 전경련에 복귀해야 한다. 전경련에 복귀하여 정정당당하게 재계를 이끄는 4대재벌의 모습을 보고 싶고, 우월한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하고 재계와 수준 높은 대화를 이끄는 정부를 보고 싶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18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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