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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김동연 | 2017.03.13 | N0.218

운무망망(雲霧茫茫). 안개가 짙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정치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정운영 시계(視界) 제로 상황이 우려된다. 모두가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극도에 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전에 없던 상황이다. 이제껏 가보지 않은 새 길이 필요한 이유다.


대선 공약이 넘치면서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내용도 문제지만, 더 큰 걱정은 실천이다. 특히 이번이 그렇다. 공약 실천의 힘은 결국 예산인데, 예산 사이클은 정치 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재정당국은 3월 말까지 예산편성 지침을 확정하고, 부처는 5월 말까지 예산요구안을 제출해야 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현 정부의 부처가 현 장관의 지휘를 받아 예산안을 만들게 된다. 새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공약을 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국정운영 시계에 운무가 진하게 끼는 것이다.


안개를 더 짙게 하는 변수가 있다. 만약 대선이 당겨지면 인수위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장관을 지명하고 청문회를 거쳐 행정부가 모양을 갖추는 데 근 한 달의 시간이, 정부 조직개편까지 한다면 두 달여가 소요될 것이다. 참여정부 41일, 이명박정부 32일, 박근혜정부 52일. 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벚꽃선거가 현실화된다면 새 정부가 일하는 준비를 마치는 데 빨라야 5월 말, 늦으면 6월 말까지 넘어간다는 얘기다.


가보지 않은 새 길의 출발점은 `협치`다.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면 각 당이 후보를 확정한 뒤 대안을 내고 빠른 시간 내 국회에서 법 통과를 목표로 협의에 들어간다.


과거와 달리 국회·정부·정당이 함께 만들어야 새 정부 출범 후 혼란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제껏 없던 일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편하지 않아도 될 조직을 만든다면 우리 정치행정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다.


예산 문제는 더 복잡하다. 각 당은 공약을 보다 구체화하고 부처도 복수 정당의 비슷한 공약만이라도 재원추계나 집행방법에 대한 검토를 미리 한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당선자 측과 부처 간에 주요 공약을 예산요구안에 어떻게 담을지 협의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서는 각 후보 측에서 부처와 협의할 내용에 대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재정당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의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약에 대한 `자기검증`도 이제껏 가지 않은 길이다. 어떤 후보도 공약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재원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준비가 덜 된 설익은 공약도,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혀 좌초하는 공약도 있을 것이다. 취임 초기 `공약점검 및 추진단`을 구성한다. 모든 공약을 면밀히 점검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폐기하거나 장기과제로 넘길 것을 구분한다.


예산뿐 아니라, 누가 어떤 방법으로 실천에 옮길 것인지도 정한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상세히 밝히면 좋겠다. 공약의 수정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 없다. 국민의 성숙도로 볼 때 진정성을 갖고 솔직한 입장과 계획을 밝힌다면 오히려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 후보의 공약이나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중 바람직한 것들을 보완해 포용한다면 새로운 `협치`의 모습도 만들 수 있다.
 

지도자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새 나라가 되는 것도, 좋은 정책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천력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인재의 등용과 재원 배분, 진정성 있는 소통을 넘어 국민의 역량을 이끌어내고 통합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용기가 얹어져야 우리 앞에 짙게 드리워진 안개를 걷어낼 수 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전 국무조정실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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