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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탄핵 결정문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석연 | 2017.03.13 | N0.217

국민배신 대통령의 자격 상실
헌법 제1조를 국민에 돌려줘
모두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관용·진실의 공동체 회복해야


헌법재판소는 어제 재판관 8인 전원 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탄핵 인용 선고와 동시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됨으로써 그 직을 상실했다. 이번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은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대한민국이 입헌민주주의에 입각한 법치국가임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아울러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 헌법 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결정이라고 본다.

 
결정 이유에서 헌재는 국회의 탄핵 의결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여 절차 위반이라는 피청구인(대통령)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절차 위배 여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명문규정의 위배 여부 외에는 헌재의 직권판단 사항이 다. 소추 사유 중 헌법과 법률 위배 여부에 대해 헌재는 최순실에 의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은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은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정신의 훼손이라고 못 박았다. 그 밖의 직업공무원제 위반, 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에서의 생명권 침해의 소추 사유에 대해서는 탄핵 사유로 삼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탄핵심판은 형사책임을 묻는 재판이 아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재는 이미 탄핵심판의 기준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헌재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받는 헌법적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명백히 판단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 것이다.

 
어제 내려진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은 기존 헌재의 판례, 헌법의 정신 그리고 헌법재판관의 양심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물론 절차 위배, 헌법 법률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헌재가 심판정족수로 선고를 하면 판례로서 굳어지고 헌법에 의한 효력을 발생한다. 헌재 결정에 대해 학문적으로 비판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헌재 결정 자체에 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재 결정은 단심제이고 사실상 재심이 허용되지 않는다.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은 탄핵 사유일 뿐만 아니라 반헌법적 행위이기도 하다. 헌법 재판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헌법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탄핵심판이야말로 가장 정치적 성격의 헌법 재판이다. 결국 헌법제정권력자인 국민의 다수 의지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탄핵심판이 가지는 숙명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헌재가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인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 국민이라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에 배치되는 결정이고 당장은 아쉽고 분하게 느끼는 분들도 이제는 모두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모범국임을 세계에 과시할 필요가 있다.

 
2000년 11월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주의 선관위는 조지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주 대법원은 수작업 재검표를 명했다. 당시 선거인단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양 후보는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25명)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되어 있었다.

 
무효처리된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개표하면 앨 고어 측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때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5대 4의 표결로 재검표를 즉시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앨 고어는 즉시 패배를 인정하고 지지자들에게 승복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방송 연설을 통해 국민의 분열을 막고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했다. 비록 탄핵이라는 불명예로 물러나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대선과 그 후 이어질 개헌 과정 등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정치인들의 전략적으로 짜맞춘 정치구도나, 언행불일치인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 착시현상 이용 의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대선주자들에게도 맹성을 촉구한다. 이제 어느 누가 집권해도 진보 보수, 좌우를 뛰어넘는 통 큰 국정운영을 하지 않으면 설 땅이 없다. 더 이상 철지난 이념 조각이나 파벌 파당의식에 매몰되어 편가르기식 국정운영이나 정치행보를 보이면 대한민국의 공동체적 연대는 급속히 허물어질 것이다. 헌재가 재판관의 성향을 떠나 전원 일치의 인용 결정을 내린 것도 정치권에 대해 이러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헌재는 보수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보다 헌법적 가치가 우선한다고 어제 강조했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는 바로 헌법이라는 선언이었다. 이제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시급히 회복해야 할 때다.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136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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