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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역사의 전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관리자 | 2017.04.14 | N0.19

▲ 2011년 6월 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반환 환영대회’


6년 전 오늘은 프랑스가 보관 중이던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날입니다. 외규장각 도서는 2011년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4차례에 거쳐 들어왔는데요.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5년 단위로 자동 갱신되는 영구대여’ 형식의 반환에 합의한 결과입니다.


정부 차원의 협상으로 다량의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이 때가 처음인데요. 당시 언론들은 비록 영구대여 형식의 반환이지만 약탈문화재 반환 역사에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규장각의 부속시설로 강화도에 설립한 도서관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을 파괴하고 귀중 도서 340여 권과 지도, 갑옷 등을 약탈해 갔습니다.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외규장각 도서는 1978년 재(在)프랑스 역사학자 고(故)박병선 박사에 의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박병선 박사는 이 사실을 고국에 알리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정부 차원의 협상이 시작된 것은 1991년입니다. 노태우 정부가 반환을 요청했지만 프랑스를 이를 무시했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경부고속전철 국제 입찰에 테제베가 참여하면서 프랑스는 진전된 입장을 보였습니다. 같은 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1997년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양국 민간 대표 간 반환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이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정부가 협상을 재개했지만 이마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끌어오던 양국 협상은 2010년 11월 12일 서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임대형식의 반환이라는 이유로 국내 일각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우리 문화재가 프랑스에 잠시 전시되는 사실을 두고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프랑스에 넘기는 조건으로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받았다’며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거짓 괴담까지 퍼졌습니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반환한 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문화재를 영구반환하기 위해서는 자국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요. 그 경우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수많은 국가들의 문화재를 모두 돌려줘야 할 입장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대여 형식의 반환을 놓고 프랑스 내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2010년 10월 18일,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입을 빌려 “양국 정상의 합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문화부의 입장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리베라시옹>은 “이번 결정은 국내법과 상충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전 세계 박물관과 도서관 등을 상대로 줄기차게 벌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반환 요구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그동안 요구해온 ‘상호 등가’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있는 형식을 묵살하고 ‘5년 단위 갱신 대여’라는 포장을 한 ‘사실상의 반환’”이라 꼬집었습니다.


2011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해 박병선 박사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동기를 제공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박병선 박사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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