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⑳ 김백준이 MB를 지목한 이유는?강훈 | 2023.01.13 | N0.12
매년 지급되던 보훈단체 격려금이 2010년에 중단된 것은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백준의 실수 때문이었다.

원래 보훈단체 격려금 예산은 대통령실 특활비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2010년 예산편성을 할 때 김백준은 이 예산을 대통령실 특활비에서 삭감해 버렸다. 보훈단체 격려금은 대통령실 특활비가 아닌 보건복지부 예산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예산에도 보훈단체 격려금을 포함시키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2009년 말, 김백준은 ‘2010년도 특수활동비 집행계획’을 만들어 각 수석실로 통보했다. 그러자 당시 보훈처 업무를 담당했던 보건복지비서관 노OO이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이었던 주OO를 찾아와 격렬하게 항의했다. 다른 단체도 아닌 보훈단체들인데 좌파정권에서도 지급되던 격려금이 우파정권 들어 중단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내용이었다.

주OO는 이 같은 사실을 김백준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김백준은 보훈단체 격려금 지급업무를 기존의 보건복지비서관실에서 행정자치비서관실로 이관시켜 버렸다. 자신의 실수가 MB에게 알려져 문책을 당할 것을 우려한 결과로 사료된다.

또한 김백준은 주OO와 상의해 보훈단체 격려금을 매년 1억5000만원 정도 책정되는 대통령실 예비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예비비가 보훈단체 격려금 예산과 비슷해 총무기획관실에서 잘 관리만 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2010년 2월 설 명절을 맞아 김백준은 계획한대로 대통령실 예비비 9700만원을 행정자치비서관실로 보내 보훈단체 격려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천안함 용사들 조문비용 등으로 대통령실 예비비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그로 인해 김백준은 2010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보훈단체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됐고, 보훈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전례에 따르면 보훈단체 격려금은 매년 설 명절과 호국보훈의 달, 그리고 추석 명절에 3차례 나눠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김백준은 2010년 7~8월경 국정원 자금 2억원을 받아와 2010년 9월경 보훈단체들에게 격려금 9700만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비용은 앞서 2월에 보훈단체들에게 지급한 대통령실 예비비 9700만원을 보전하는데 사용했다.


▲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주모 행정관의 검찰 진술 내용 중 일부.

검찰 수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김백준은 그 책임을 모두 MB에게 돌렸고, 검찰은 김백준 진술을 근거로 이 사건을 MB의 3차 국정원 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김백준은 검찰조사에서 “2010년 호국보훈의 달에 MB가 행사를 다니던 중, 보훈단체들로부터 격려금 지급이 중단된 것에 대해 항의성 민원을 받았다”며 그래서 자신을 불러 물어보기에 “지난번과 같이 국정원에 요청하는 것이 어떻냐”고 말씀드렸고, 이후 원세훈 국정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와 국정원 자금 2억원을 받아 격려금을 지급했다고 진술했다.

정황상 볼 때, 김백준 진술은 그대로 믿기 힘든 이유가 있다. 먼저 2010년 6월 보훈단체 격려금이 지급되지 못한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김백준의 실수 때문이었다. 본인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김백준이 해당 업무의 담당부서도 바꿔 버리고 예비비도 사용한 정황이 관련자들의 진술 및 검찰에 확보한 증거자료에도 명백하게 나와 있다.


▲ MB의 3차 국정원 자금 수수 혐의와 관련, 김백준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

만일 MB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김백준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른 예산도 아닌 MB가 평소 중요시하는 호국보훈 관련 예산이었고, 특히 2010년은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이 문제가 특히 민감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백준의 진술에는 그 같은 정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백준의 실수로 항의를 받은 MB가 김백준을 불러 어려움을 호소했고, 김백준이 국정원 자금 요청을 건의하자, MB는 두말 않고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6월에 보훈단체들에게 지급해야 할 격려금은 9700만원이었다. 대통령실 특활비 1년 예산이 160억원인데, MB가 그 정도 돈을 청와대 예산으로 융통하지 못해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실장에게 한마디만 해도 간단히 처리될 문제였다.

이런 정황 증거 이외에도 김백준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MB에게 보훈단체 격려금 문제가 보고되는 과정’에서 명백해진다. 김백준은 “2010년 6월 보훈단체들이 항의를 하자 보훈단체를 담당하는 진영곤 사회정책수석이 MB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훈단체 담당업무는 2010년 1월 보건복지비서관실에서 행정자치비서관실로 이관됐다. 행정자치비서관실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이 아닌 정무수석실 산하의 부처다. 즉 해당 업무의 담당수석은 진영곤 고용복지수석이 아니었고, 따라서 진영곤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백준의 진술은 명백한 허위이다.


▲ 김백준과 주모 전 행정관의 검찰 진술 내용 비교.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은 청와대의 자금지원 요청에 대해 ‘아랫사람’으로부터 들었고 진술했다. 보훈단체 격려금이란 소리는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처음 들었고, 당시에는 기념품 시계를 만드는 돈이 부족하다며 청와대에서 지원을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김백준에게 돈을 전달한 국정원 예산관 최OO도 특활비 지원 목적에 대해서는 원세훈과 같은 진술을 했다. 원세훈 원장이 “청와대에서 기념품을 살 돈이 없는 모양이니 김백준 비서관에게 연락해 2억원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만일 김백준의 진술대로 MB가 국정원 자금을 요청했다면, ‘보훈단체 격려금’이라는 자금의 용도를 숨기고 ‘기념품 시계 비용’이라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김백준이 국정원 자금을 요구한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동기가 생긴다. 보훈단체 격려금 예산을 삭감한 자신의 실수가 대통령의 귀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또한 원세훈은 검찰조사에서 “MB가 자금지원을 요청했냐”는 검사의 질문에 “대통령이 그런 사소한 일로 나에게 직접 자금지원을 요청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서 자금 지원이 필요하면 청와대 실무자 급과 국정원 관계자가 이야기를 하여 나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도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전화해 “청와대 기념품 시계 제작에 쓸 비용이 부족하니 국정원 특활비 2억원만 교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용도나 금액으로 볼 때 김백준이 국정원에 요청한 것으로 보는 게 앞뒤가 맞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검찰 진술과 증인신문 내용. 국정원 예산관 최모씨의 진술 내용 중 일부.

이처럼 2010년 6~7월경 있었던 청와대의 국정원 자금 수수는 모든 증거와 정황,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김백준의 소행임을 지목하고 있다. MB가 국정원 자금을 요청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김백준의 진술뿐이다. 그런데 김백준 진술은 정황상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이미 허위로 드러난 사실이 많아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는 김백준의 진술을 받아들여 MB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 판단의 근거는 먼저 “원세훈이 청와대로부터 자금지원 요청을 받았다고 진술하면서도, 누구로부터 요청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며 “만일 김백준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면 그 사실을 진술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김백준이 요청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처럼 재판부 판단은 “원세훈이 직접 청와대로부터 자금지원 요청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원세훈은 검찰조사나 증인신문에서도 그런 내용을 인정한 적이 없다. “밑에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그래서 누가 요청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세훈의 인정’이라는 거짓 전제로 판결을 한 것이다.

원세훈이 직접 자금지원 요청을 받았다는 유일한 근거는 김백준의 진술뿐이다. 결국 재판부는 ‘김백준의 진술을 근거로 원세훈 진술을 거짓되게 왜곡하여 김백준에게 범죄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법부는 “김백준이 국정원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면 그 사실이 MB에게 보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김백준이 그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MB 몰래 국정원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세훈은 “청와대에서 자금 지원이 필요하면 청와대 실무자 급과 국정원 관계자가 이야기를 하여 나에게 보고하였을 것”이라고 일의 처리절차를 분명하게 진술했다. 그리고 원세훈은 그 같은 사소한 일은 대통령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들도 원세훈의 진술에 부합한다. 앞서 글에서 살펴본 2차 수수에서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은 “김백준이 자꾸 국정원 자금을 요청해 문제를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른 국정원 직원들도 당시 김주성으로부터 그 같은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고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처럼 모든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관되게 실체적 진실을 지목하고 있음에도, 사법부는 이 모든 진술들을 외면했다. 그러면서 ‘MB가 국정원장에게 자금을 요청했다’는 유일한 김백준의 진술만을 근거로 본인들의 상상력을 더해 청와대와 국정원간의 일의 처리 절차를 멋대로 재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 국정원 자금으로 보훈단체 격려금을 지원한 사실을 두고 국고손실죄로 판단한 것 자체가 문제다.

“내가 부족한 청와대 경비를 충당하려고 국정원 특활비를 받았다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그걸 왜 숨기겠어요? 사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국정을 위해 썼다는데 말이지!”

국정원 자금 수수혐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MB가 늘 하는 말이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1,2차 혐의와 마찬가지로 검찰은 MB의 국정원 자금 3차 수수 혐의도 MB가 공적인 용도로 자금을 사용했다며 기소했다. 사법부는 그 중 2차와 3차 혐의에 국고손실죄를 적용했다.

국고손실죄는 재산범죄인 횡령죄의 가중처벌 규정이다. 따라서 국고손실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손해를 입히는 동시에 본인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원래 대통령실 특활비 예산으로 집행하던 보훈단체 지원금을 국정원 특활비로 집행한 행위다. 따라서 국가가 손해를 입은 것도 아니며, 대통령이나 국정원장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은 것도 아니다.

즉, 이 문제는 예산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문제로, 관련 법령의 벌칙규정을 적용하면 될 일이다. 사법부가 국고손실죄를 적용한 이유는, 이미 MB와 국정원장들의 유죄를 확정지어 놓고 거기에 꿰맞추다 보니 이 같은 잘못된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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