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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그 가슴 벅찬 순간관리자 | 2018.01.08 | N0.31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괜히 도전했다가 안 되면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09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논의가 본격화되자 참모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류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도전은 2003년과 2007년 이미 두 차례 좌절을 겪었다. 올림픽 역사상 3번째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참모들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3번째 도전이 실패할 경우, 이명박 정부가 입을 정치적 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건국 6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바탕으로 선진화를 추구할 때였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경제수준에 걸맞은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선진국들의 전유물이었던 동계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한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미 평창에는 전임 정부 시절 알펜시아 등 1조원에 달하는 시설투자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평창 유치를 포기할 경우 국민의 혈세로 만든 이들 시설이 쓸모없이 버려질 가능성이 컸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기존의 투자를 보다 가치 있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평창 유치를 위해서는 먼저 아시아 국가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지지는 반드시 얻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다소 미온적인 태도였다. 이명박 정부는 외교력을 먼저 중국에 집중했고, 결국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공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중국이 공개적으로 평창 올림픽을 지지하면서 일본 역시 지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지지하자 아시아 국가들 모두가 한국을 지지했다. 아시아가 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렇게 단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쟁 상대였던 독일과 프랑스로 결집되는 유럽 국가들의 표를 분산시키는 작업도 필요했다. 당시 유럽 몇몇 국가들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틈새를 공략해 유럽 국가들의 결집을 막았다.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은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 도착했다. 평창은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나승연 대변인, 조양호 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김연아 선수, 문대성 IOC 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토비존슨 선수의 순서로 이어진 프리젠테이션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열과 성을 다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평창~”이라는 외침에 객석에서 환호가 울려 퍼졌다. 1차 투표에서 총 95표 중 과반수가 넘는 63표를 평창이 획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던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진선 특임대사 및 실무자들도 서로 얼싸안았다. 후일 ‘더반 대첩’으로 일컬어진 감격의 날이었다.

유치 때만해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2011년 더반에서의 가슴 벅찬 순간이 2018년 평창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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