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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탄생’의 숨겨진 이야기관리자 | 2017.07.11 | N0.27


▲ 이명박 대통령과 서울 G20 정상회의 유치의 숨은 공신 케빈 러드 호주 총리 


2009년 4월 2일, 영국 런던에서는 제 2차 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세션이 시작되기 전 호주의 캐빈 러드 총리가 분주하게 회의장을 돌며 각국 정상들과 귀엣말을 나눴다. 그러더니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대통령님, 지금 정상들과 급하게 논의되는 중인데 다음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할 의향이 있습니까?”

뜻밖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러드 총리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차 워싱턴 회의에 이어 2차 런던 회의가 열렸지만 아직 G20 정상회의는 정례화 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G14 체제를 지지한 반면 미국은 G20 체제를 지지했다. 호주는 G14로 갈 경우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이해를 같이했다.

그런 가운데 향후 일정이 논의되고 있었다. 3차 G20 정상회의는 6개월 후인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다음해인 2010년 6월에는 캐나다에서 G8 정상회의가 계획되어 있었고, 2010년 11월 제4차 G20 정상회의 개최국은 일본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G14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러드 총리는 일본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될 경우 유럽과 일본의 의도대로 G14로 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러드 총리는 호주 개최를 추진했지만 여건이 안 되어 한국 개최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은 워싱턴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스탠드스틸(stand stil, 보호무역주의 동결)을 제안해 각국 정상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신흥국에 대한 유동성 공급, 국제경제기구 재원 확충 등, 1,2차 G20 정상회의에서 핵심정책을 잇달아 제안하면서 G20 체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가 높이 평가받고 있었다.

“러드 총리의 호의는 고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다음 개최지로 일본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한국이 개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외교관례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대통령께서 먼저 개최의사를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각국 정상들의 합의가 모아지면 그 때 수락만 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논의가 끝난 뒤 다시 러드 총리는 다시 한 번 회의장을 바삐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와 “한국 개최로 각국 정상들의 의견이 모아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개최 여부를 물었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손짓으로 지지의사를 표했다. 그 때까지도 일본의 아소 타로 총리는 4차 개최지가 일본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2009년 9월 초,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를 보름 남짓 앞두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듬해 6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G8 정상회의를 G14로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프랑스의 전략은 캐나다에 이어 2011년 프랑스 G8 정상회의도 G14로 확대 개최하여 G14 체제를 고착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러드 총리와 전화통화를 통해 캐나다 G8 정상회의를 G20으로 확대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면 프랑스도 이듬해 G14가 아닌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략이었다. 러드 총리와 논의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은 3차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4차 캐나다 G20과 5차 서울 G20이 확정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2009년 9월 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제3차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의 의도대로 4차 캐다나 G20 정상회의와 5차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가 합의됐다.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가 세계경제 협력의 최 상위 포럼으로 공식 선언됐다. 우리로서는 ‘G20 정례화’와 ‘G20 서울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외국의 원조 없이는 먹을 것, 입을 것도 해결할 수 없는 나라였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국민소득 70불의 세계 최빈국에 속한 나라였다. 그런 한국이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선도국가들이 인정하는 국제사회의 주역이 됐다. 다른 나라가 짜 놓은 수동적인 역할에 만족했던 대한민국이 드디어 새로운 틀과 판을 짜는 나라가 된 것이다.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그것이 한국의 G20 참여가 가진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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