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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不在, 고립무원의 한국김상협 | 2019.07.18 | N0.392
한일 관계가 지금 같은 상태에 빠져들기 몇 달 전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면담을 요청해 만남이 이뤄진 바 있다. `비공개`를 전제로 한 자리라 구체적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아소는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아소는 특히 일본과 미국의 각별한 밀월 관계를 강조하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만큼 일본의 한국정책에 일종의 `재량권`이 생긴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고 한다. 

아소는 누구인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이자 스즈키 젠코 전 총리를 장인으로 둔 그는 극우파적 망언을 일삼으면서도 총리가 되었고 이후 아베 신조 총리의 국정 파트너가 될 만큼 일본의 `인싸`다.
그의 가문을 일으킨 아소탄광은 조선인 최대징용소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런 아소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어떤 감정을 가졌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노무현정부 시절 외교장관을 지낸 반기문 전 총장을 직접 찾은 것은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까지 `외교적 채널`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명분을 쌓은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 주지하듯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판결 이래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일본은 마침내 한국 주력 산업의 급소를 겨냥한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베 총리가 전면에 나서고 경제산업상을 비롯한 내각이 총출동한 걸 보면 아소의 `예고`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일본의 주류 정치인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앙심`을 대변한다. 그들은 한국의 현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과 맺은 국가 간 약속을 무시한다는 점을 `보복`의 논거로 삼고 있는데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여기에 깔려 있는 듯하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쌓아온 그 특별한 관계를 감안할 때 일본의 이 같은 도발적 행보는 미국의 사전 양해 혹은 묵인을 얻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요인 중 스기야마 신스케 주미 일본대사와 밥을 같이 먹지 않은 인사는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와 `국채보상운동`을 외친 걸 보면 고립무원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조차 "지금은 미국이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 오는 24일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시한을 앞두고 일본이 제시한 마지막 외교적 카드는 오늘(18일까지) 제3국 중재위 설치에 대한 한국의 입장 표명이다. 일각에서는 `중재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법에 정통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국제사법체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한국을 압도한다"며 "청와대가 정말로 문제를 풀고 싶다면 한일 관계를 선악과 적폐청산의 구도로 가져가지 말고 정통 외교라인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에 특사를 보낼 때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청구권협정의 기본 정신과 역사를 존중한다는 뜻을 전하며 외교채널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한다면 한일 관계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고 고언한다. `죽창가`를 떠올리는 청와대 참모진 속에서 문 대통령이 과연 외교적 해결책을 도모할 수 있을까. 

# `두드러진 부재(conspicuous absence)`는 마땅히 있어야 할 존재가 보이지 않아 그 부재(不在)가 눈에 뜨일 경우를 뜻한다. 

한때 한국이 그랬다.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고 개발협력과 기후변화 의제를 주도하며 국제기구까지 설립했던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중견국가(middle power)`인 한국이 어떻게 글로벌 어젠다까지 설정하기에 이르렀는지를 분석한 특별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 보고서가 나온 지 5년이 채 안 된 지금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행방불명` 논란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의 외교는 지금 부재중이다. 그것도 주목받지 못하는….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연구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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