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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살리면 '소주성'도 산다 박병원 | 2019.05.29 | N0.384
내수 진작→경기 활성화 선순환 되면 '소주성'에 功 돌아가 
제조업 성공, 농업·서비스업에서도 의료·교육 등 고급화해야 수요 창출 
소비·투자, 해외로 빠져나가고 경제가 잘될 순 없지 않은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펴낸 "소득주도성장(이하 '소주성') 바로 알기" 책자에 의하면 수요 부족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1분위는 100을 벌면 125를 쓴다!)의 소득을 인위적으로라도 높여서 내수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서비스산업과 고용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해서 내수를 늘려야 한다고 20년째 주장해 온 필자의 생각과 같다.

이런 정부의 정책이 왜 소비는 별로 일으키지 못하고 투자와 수출만 위축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은 요즘 누구나 다 하고 있으니 더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내수 진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써 봐야 한다는 권고를 하고 싶다. 나중에 어떤 정책 수단 덕분에라도 내수 진작, 경기 활성화,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그 공(功)을 다 소주성 정책이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소주성 하나에만 매달려 있다가 끝내 성과가 미흡하면 책임을 면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밑져 봤자 본전"이니 한번 해 보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제조업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모든 전략, 전술, 정책, 수법을 농업과 서비스업에도 그대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과 서비스업이 경쟁력이 취약하여 멀쩡한 수요를 해외에 뺏기고 있는 것은 이 업종들에 종사하는 국민이 제조업의 경우보다 특별히 더 무능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제조업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선 서비스산업도 고급화해야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만 다루겠다. 소득이 3만달러 수준에 이르면 웬만한 기본 수요가 다 충족되기 때문에 내수 진작을 양적으로만 생각하면 금방 벽에 부딪히고 만다. 우리보다 두어 배,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에 가 봐도 하루에 밥을 세끼밖에 먹지 않는다. 각급 학교도 대개는 한 번씩만 다니고, 우리보다 더 많이 아프지도 않고, 맹장 수술을 두 번 하는 사람도 없다. 서비스의 질이 더 높고 값을 더 쳐줄 뿐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누구나 질적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추구한다. 그리고 10% 더 높은 질의 서비스에 두세 배 높은 값을 서슴지 않고 치르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수출 산업인 제조업의 고급화는 잘하는 일로 보고 장려했지만 서비스업은 내수 산업이라는 이유로 국민을 위해서 좋은 서비스를 싼값에 공급하라는 자가당착적 요구만 해 왔다. 가격 규제를 통해서 고급화를 억제해 온 결과 서비스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총체적으로 취약하게 되었고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은 해외 소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교육과 병 치료를 위해서는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육과 의료에서는 누구도 남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누려서는 안 되고, 정히 원한다면 해외로 나가라고 한다. 10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어 있는데 교육의 질은 걱정하지도 않는다. 해외로 유출되는 교육 수요가 작년 36억달러였고, 통계는 없지만 의료에서도 1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도에 한해 더 나은 교육, 의료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해서 해외로 유출되는 수요를 일부라도 잡아놓고 중국 등 해외 수요까지 끌어들여 일자리를 창출해 보자고 했지만 아직 큰 진전이 없다.

관광 수요도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빠르게 느는 분야다. 2009년 900만명이던 해외여행객이 작년 2900만명으로 늘면서 320억달러를 해외에서 썼다. 같은 기간에 외국 관광객을 700만에서 3100만으로 늘린 일본처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 되겠지만 가파르게 늘어나는 수요의 해외 유출에 대책 없이 당하고만 있어서는 내수 진작은 어려울 것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소주성의 3대 축의 하나인 '가계지출 경감정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로 알기"에 의하면 의료, 보육, 주거, 교육, 통신, 교통비의 경감이 약속되어 있는데, 국민이 더 쓰고 싶어 하는 이 분야들에 대한 지출을 줄여 줘서 어디에 쓰라는 것인가. 지출이 줄면 이 분야들의 수요, 그  리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국민의 소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소주성이 정말 성공하려면 누구의 소득은 늘지 않아도, 심지어는 줄여도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서비스업도 고급화를 추구할 수 있게 해서 누구라도 더 벌 수 있으면 더 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국민이 소비도 투자도 점점 더 해외에 하게 해서는 경제가 잘될 수가 없다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8/2019052803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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