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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께 사과해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김대기 | 2019.03.25 | N0.375
나라 힘 없으면 백성들 곤욕…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치르며 굴욕 겪었지만 역사 또다시 반복
변화에 무능하고, 우리끼리 싸우며 상공업 경시할 때 변고 당해… 强國 만드는 게 진정한 克日


일본과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 정치인들마저 반일 정서에 가세하면서 이제는 '일본 제품에 전범 딱지를 붙이자'는 시대착오적 발상까지 나오고 있다. 해방되고 74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친일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가 놀랍기만 하다. 그만큼 일본이 저지른 죄가 컸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의 죄도 만만치 않다. 1894년 조선을 여행한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기행문을 보면 당시 조선은 나라도 아니었다. 이렇다 할 산업 없이 농사와 고기잡이로 연명하는 나라, 도로가 없어 제물포에서 한양까지 산길이나 뱃길로 가야 하는 나라, 열심히 일해 봐야 세금으로 빼앗기니 차라리 노는 것이 더 나은 나라.
 
국고는 비었고 돈을 찍어 나라를 운영하다 보니 경제는 파탄 났고 (당시 1달러가 엽전 6000냥, 무게로는 6kg에 달했으니 지금 베네수엘라보다 더 엉망), 군대에는 화포 하나 변변히 없고, 일본과 청나라 군사가 자기들 안방처럼 드나들어도 항의할 힘도 없는 나라. 당시 조선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나라였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이 곤욕을 치르게 되어 있다. 사실 우리 선조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도 말할 수 없는 화를 입었다. 병자호란 즈음 청천강 이북 지역은 후금군의 약탈과 살육으로 백성은 어육이 되었고, 수십만명이 포로로 끌려가서 심양에 인간 시장까지 생겼다고 한다.

여인들의 참상은 더하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는 "강화도에 피신 갔다가 붙잡힌 부녀자들이 겁탈을 피해 자결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머릿수건이 낙엽처럼 바다 위에 떠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나라 군인에게 성노리개로 끌려간 여인들은 그 추운 만주에서 온갖 잡일을 다하면서 본처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다. 오죽하면 홍타이지가 조선 여인을 구타하는 만주 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경고까지 했겠는가. 이 여인들은 나중에 화냥년이 되어 고국에서도 버림받았다.

이런 중국 역시 청나라 말기 열강들에 호되게 당했다.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차출은 물론 난징에서는 수십만명이 학살되었고 '마루타'라는 반인륜적인 인체 실험까지 당했다. 영국은 아편으로 중국인들을 병들게 하고 홍콩을 뺏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은 천안문까지 침략하여 중국을 초토화했다. 늘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해온 중국이지만 서구 열강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금년 3·1절 100주년을 맞이해서 과거 역사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최소한 두 가지 점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실익이다. 우리는 세계가 요동칠 때마다 변고를 겪었는데 지금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자유무역 기조가 사라지면서 경제 위기를 맞이할 수 있고, 주한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 세상이 불투명할 때는 하나의 우방국도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 역시 일본에 혹독하게 당했지만 지난해 상호 평화 우호 관계 지속을 약속하고, 과거 중단된 통화 스와프 재개는 물론 청소년 교류까지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중국이라고 반일 감정이 없을까만 트럼프라는 강적을 만나서 자기들이 더 강한 나라가 될 때까지 참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정치인까지 나서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정치적 이득을 떠나서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반성이 빠졌다. 지금 우리의 초점은 일본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고, 우리는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19세기 후반 그 짧은 기간에 조선은 어떻게 무너졌고, 일본은 어떻게 그리 강해졌는지 반성해야 한다.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이순신 장군은 "잔혹한 왜인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다시 더 크게 당했다.

우리가 변고를 당할 때는 늘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세상이 요동칠 때 변화에 무능했고 둘째, 우리  끼리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웠으며 셋째, 상공업을 경시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성하고 바뀌지 않으면 또 당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도덕이 아니라 힘이 지배한다. 일본이 위안부 할머님과 강제 징용되신 분들에게 사과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나라를 만든 우리 자신이 먼저 반성하고 대한민국을 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극일이 아닌가 싶다.

김대기 前 청와대 정책실장, 단국대 초빙교수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2/20190322032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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