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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몰락한 이유는 딴 데 있다최중경 | 2018.07.30 | N0.332
지난 6·13 지방선거는 이론의 여지 없이 보수진영의 철저한 패배였다. 
보수진영이 몰락한 원인에 관한 분석이 다양하다. 

"보수가 진 게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진 것이다. 
" "시대착오적 안보정당 고수가 패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거품이라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 "열세인 보수가 분열됐기 때문에 이길 방법이 없었다. 
" 모두 일리 있는 분석이다. 

분열되면 지는 건 초등학생들도 알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도 선거전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인데,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고도 제대로 된 반성 없이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은 정밀진단 없이 수술부터 하고 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탄핵 여파가 생각보다 강했다는 상황 논리와 선거 전략 실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보수 몰락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보수진영의 몰락은 진보진영이 만들어준 간판이 달린 집에서 진보진영이 맞춰 준 옷을 입고 살면서도 그런 사실을 꿈에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 이론가들은 양지에 머물며 연구를 소홀히 했지만 진보진영 이론가들은 사명감을 갖고 연구하며 젊은 세대에게 전파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 이론가의 인식과 연구가 부족했다는 증거는 여럿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 둘만 댄다. 

보수를 산업화 세력, 진보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한 정의를 받아들이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은 보수진영 이론가들이 '보수주의=자유주의'라는 보수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수 행세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보수진영은 '산업화를 위해 자유의 희생을 강요한 독재 잔재 세력으로서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옷을 입고 있으며 원죄를 반성해야 하는 기득권 집단'이라는 진보진영의 정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보수진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보수진영에서 활약하는 역설적 상황을 오래 방치했고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 됐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논객이 갑자기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 캠프로 가서 지지 연설까지 했다. 

정치철학을 바꿀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성실하게 실천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보수의 정체성을 보여줄 변변한 깃발조차 없었지만 반공교육에 길들여진 노년 세대의 지지와 지역연고주의의 완고함에 기대 진보진영과 비교적 유리한 싸움을 해 왔지만 세대교체, 지역연고주의 퇴색에 따른 내리막길에서 한반도 해빙 무드까지 겹쳐 결정타를 허용했다. 

여야를 떠나 존경받는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이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와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치 발전에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선진국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토론하며 정책을 개발하면서 건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도 '좌파척결'이나 '보수궤멸' 같은 섬뜩한 구호를 몰아내고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며 토론하는 정치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보수논객들이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보수주의를 연구하고 전파해야 한다. 

진보적 가치를 수용하고 진보성향 인사를 수혈하는 것이 합리적 보수라는 어설픈 열등의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십자군전쟁을 겪었고 오늘날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구약성서를 공유하며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와 진보도 알고 보면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시장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에 차이가 없다. 

진보는 복잡한 산업화 사회에서 연약한 개인을 상정하고 약자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보수는 자기 책임으로 행동하는 독립성 강한 개인을 상정하고 도움을 절제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보수와 진보 간에 복지정책에 관한 시각 차이가 생겨 진보진영은 '보다 많은 복지'를, 보수진영은 '보다 절제된 복지'를 주장한다. 

보수와 진보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현대 정치의 요체다. 

보수다운 보수와 포용적인 진보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mbnmoney.mbn.co.kr/news/view?news_no=MM100328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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