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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이 몰고 올 문제, 얼마나 알고 있나 천영우 | 2018.05.10 | N0.319
주한미군 주둔 명분 약화될 게 분명 
중국이 4자회담에 포함되면 한반도 내정간섭 확대될 것
북한 주권·영토 인정하면 위헌 소지… 영구분단 제도화 가능성 있어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비핵화의 방법과 범위를 둘러싼 양측 간의 기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이 요구할 비핵화의 조건과 대가를 어디까지 수용할지에 대한 논의는 겉도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평화협정 체결이 제기할 문제는 만만치 않으므로 사전 대비를 위해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평화협정은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다. 북한이 평화협정에 매달려온 가장 큰 목적도 유엔사령부의 해체를 넘어 주한미군의 철수에 있다. 김정일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용인할 뜻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하나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 지금은 철수를 관철할 협상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철수를 요구해도 소용없었던 18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만약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협상자산을 더 현실적이고 실속 있는 대가를 받아내는 데 활용하기 위한 속셈일 것이다. 

김정은이라면 주한미군 철수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 더욱 힘을 얻을 남한의 반미세력에 맡겨둬도 된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미 양국에 통 큰 양보를 하는 듯하다.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안전보장을 받고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늘리는 데 협상력을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경제적 실익보다 한미동맹 공동화(空洞化)를 더 중시한다면 북-미 협상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마지막 걸림돌로 남게 된다. 미국은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해 미군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봉착한다면 우리 정부는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차라리 비핵화를 포기하자고 할 것인가.

둘째, 평화협정의 당사자에 중국을 포함시킬지 여부다. 이는 향후 전개될 동북아의 전략적 경쟁 구도 속에서 역내 패권세력에 한반도 장래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접근할 사안이다. 한국이 앞장서서 중국의 참여를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북한이 반대한다면 공조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6·25전쟁에 참전해 18만3000여 명의 목숨을 바쳐 북한을 구해준 정전협정의 엄연한 서명국인 중국의 시각에서는 평화협정에서 배제되는 게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1997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뉴욕 4자회담 때부터 중국의 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이는 2007년 10·4선언과 지난달 27일 판문점 선언에서도 확인됐다. 북한이 중국의 평화협정 당사자 자격을 부정하는 표면적 근거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한반도 내부 문제에 간섭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의 이해관계와 다를 바 없다. 

셋째, 평화협정은 한반도 주변 수역의 국제법 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평화협정 발효와 동시에 존립 근거를 상실하고 남북 간 해상경계선은 평시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설정될 수밖에 없다. 연평도와 소청도에서 각각 12해리가 넘는 NLL 20해리 구간에서는 북한의 영해가 영해기선에서 12해리까지 남쪽으로 확장된다. 북한 선박은 이 구간을 통과해 공해로 나갈 수 있고 우리 영해 내에서도 무해통항권을 누린다. 북한 군함과 항공기가 덕적도 앞바다 공해상의 우리 군 작전수역(AO)과 그 상공을 휘젓고 다닐 상황에는 대비하고 있는가.

넷째, 평화협정의 국내법적 지위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평화협정이라면 위헌의 소지가 있다. 또 북한의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을 존중하는 조항이 포함된다면 이는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과 충돌할 것이다.

끝으로, 북한 내부 사정으로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평화협정이 우리의 선택을 제약하고 영구 분단을 제도화할 가능성도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Nothing is agreed until everything is agreed)이라는 협상 격언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80510/90007239/1#csidx47b2994173db7d2a907351ac44236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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