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함께 만드는 이슈 > 칼럼
명(名)과 실(實)이 어긋나는 세법개정안박재완 | 2017.08.28 | N0.272
왜곡된 소득세 누진체계와 보편적 복지로 
그동안 재정의 재분배효과 크지 않았을뿐 
직접세보다 소비세 인상이 경제활력 '효과'

 
이달 초 발표된 세법개정안이 9월1일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리겠다는 것이 골자다. 세법개정안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다. 대다수 국민에게는 별 영향이 없고 극소수 납세자만 서리를 맞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양극화 추이와 함께 우리 재정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낮다는 공감대도 한몫했을 터다.
 
사실 우리는 조세와 복지지출 등의 재분배 효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에 속한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조세 누진체계를 강화하고 복지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여당 입장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진단에 입각한 섣부른 처방이다.

우리 재정의 재분배 효과가 약한 까닭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공적연금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해 앞으로 국민연금이 성숙단계에 진입하면 재정의 재분배 효과는 상당히 개선될 전망이다. 소득분배를 측정하는 대표적 지수인 ‘지니(Gini)계수’가 재정 때문에 개선된 비율은 2006년 7.3%에서 2014년 11.4%로 크게 향상됐다. 국민연금 역할이 점차 강화되면서 재분배 효과도 확대됐다.

둘째, 2010년대에 들어 복지지출이 확대됐지만 보편적 무상복지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면서 기대했던 재분배 효과가 희석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소득 상위 30% 계층이 하위 30%보다 무상복지 혜택을 1.4~1.7배 더 많이 누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셋째, 정부가 개입하기 이전 시장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의 분배 상태가 선진국보다 양호한 점도 우리 재정의 역할 공간을 좁힌 한 요인이다. 넷째, 왜곡된 소득세 누진체계와 지나친 비과세·감면 때문에 세원이 소수의 고소득층에 편중됨으로써 조세의 재분배 효과도 제약되고 있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소득세 체계는 이례적으로 누진도가 높아질수록 분배가 악화되는 ‘역(逆)U자 관계’를 보인다. 

요컨대 재정의 재분배 효과를 강화하려면 보편적 무상복지 대신에 저소득층을 선별해 지원하는 한편, 소득세 누진체계는 오히려 완화해야 한다. 이번 세법개정안이 지향점은 옳지만 그 경로는 엉뚱한 곳을 택한 셈이다. 특히 다음 네 가지를 유념해 바로잡았으면 한다. 

우선 고용주가 부담하는 노동비용과 근로자가 받는 실질임금의 차이인 ‘조세격차(tax wedge)’, 곧 임금소득의 실효세율을 보면 우리는 OECD 35개국 중 30위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소득수준 상승에 발맞춰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조세격차를 차츰 올려나가야 한다. 다만 2000~2016년 OECD 회원국은 조세격차가 평균 1%포인트 이상 하락한 반면 우리는 매년 상승해 4~5%포인트 넘게 증가했다. 그러므로 상승 속도가 가파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중산층 이하에서 조세격차의 누진성이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조세재정연구원 지적처럼 이 구간의 누진성을 강화해야지 최고세율만 자꾸 올려서는 세수 증대와 소득재분배 강화에 한계가 있다. 

한편 2016년 우리의 조세격차는 독신 무자녀 가구 22.2%, 맞벌이 기혼 무자녀 20.9%, 맞벌이 기혼 2자녀 19.6% 등으로 가구 유형에 따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OECD 평균은 각각 36.0%, 32.8%, 28.2%로 그 차이가 훨씬 크다. 아동수당 신설에 앞서 가구 유형별 조세격차 차이를 확대해 결혼 및 출산 유인을 높여야 한다. 

끝으로, 새 정부에서 폭주하는 복지재정 수요를 충족하려면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보고서를 눈여겨봐야 한다. 1978~2012년 OECD 16개국의 경험에 따르면, 소득분배를 개선하면서 재정건전성도 확립하는 세제 개혁은 대체로 경제 활력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직접세보다는 소비세가 그런 부작용이 작은 데다 소득재분배 효과도 더 컸다고 한다. 세법개정안이 내건 목표(名)와 방법(實)이 부합하도록 국회에서 걸러지기를 기대한다. 표심(票心)에 맞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정치인이 있을까.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한국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