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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김황식 | 2017.08.02 | N0.265
한독포럼 참석차 7월 초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풀다를 방문하였습니다. 풀다시(市)는 독일 통일 전 나토군(軍)과 바르샤바군(軍)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접경 도시였습니다. 양측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 그 시작은 이곳일 것이고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존재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어 그런 공포가 사라진 지금, 하이코 빙엔펠트 풀다 시장은 가장 위험하고 변방이었던 도시 풀다는 지리적으로 통일 독일의 중심이 되었고 사람과 기업이 모여들어 헤센주(州)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되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포럼을 마친 후 대치 현장이었던 포인트 알파를 시찰하고 그곳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한 한국과 독일에 있어서 기억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접경 지역 시군의 단체장들도 참가하여 독일 측의 경험을 듣고 접경 지역 행정의 애로와 미래의 소망을 함께 얘기하였습니다. 동독의 국방장관을 지낸 라이너 에펠만 씨는 자신은 93세까지 사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삶이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삶보다 더 길어지기 때문이라며. 지극히 평화로운 풍경 가운데 남아 있는 철조망, 탱크들과 군 막사들 사이에서는 화약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통일을 이루고 평화체제를 만들어낸 그들의 역량이 부럽기만 하였습니다. 

주말여행을 함께하고 귀국하라는 독일 친지의 권유에 따라 프랑스 알자스 지방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州) 슈파이어시(市)를 여행지로 삼았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좀 더 생각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알자스 지방은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수차례 전쟁을 하고 그때마다 주인이 바뀐 곳이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도 1871년 독일·프랑스 전쟁이 끝난 후 알자스 지방이 독일로 편입되고 더 이상 프랑스어를 배울 수 없게 된 사정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이 지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고 그 중심 도시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연합의 의회와 인권재판소 등이 있는 곳으로 이제는 유럽의 통합과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양국의 문화가 공존하고 유럽 통합에 따라 국경이 없이 서로 오가며 생활하게 되었으니 기적 같은 일입니다. 드넓은 포도밭과 나지막한 산들이 펼쳐진 그곳은 대립과 갈등을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한 평화의 땅이었습니다. 

이어서 독일 슈파이어시를 방문하였습니다. 지난 6월 작고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묘소를 들르고 싶어서였습니다. 며칠 전 안장을 끝낸 그의 묘소는 아데나워공원 한구석, 작은 교회 옆에 참으로 소박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참배 순간 독일 통일을 이루었고 유럽연합조약 체결, 단일화폐인 유로화의 도입, 동구권 국가들의 과감한 회원 영입 등을 통해 유럽연합의 틀을 굳게 다진 위대한 정치가에 대한 대접으로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원이 그가 존경했던 선배 정치인의 이름을 딴 공원이고 인접한 교회는 1954년 갈등하던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함께 세운 `성 베른하르트 평화교회`이니 그가 안식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닌가 하고 좋게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의 유럽 평화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정치지도자들의 확고한 신념에 터 잡은 것입니다. 전후 독일과 프랑스는 끈질기고 다양한 노력을 통해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미래지향의 역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소련 등 동구권과는 교류 협력으로 긴장 완화를 시도하면서도 강한 군사력으로 철저히 대비하였습니다.

예컨대 1980년대 초 헬무트 슈미트나 헬무트 콜 총리는 소련의 SS-20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에 맞서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하여 강하게 대응하면서도 군비통제협상을 제안하는 이른바, 이중 결정으로 결국은 유럽 평화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순결한 이상과 지혜로운 전략의 산물입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방해하는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역사입니다. 막연한 이상이나 편협한 강고함에서 벗어나 평화를 이루어낸 정치인들의 위대함을 생각하는 여행이었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51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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