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함께 만드는 이슈 > 칼럼
양극화, 노동계의 양보 없인 해결 안 된다 김대기 | 2017.07.24 | N0.263
증세, 적자 재정, 양적 완화 등 양극화 해결 위한 시도들이 분배 구조 오히려 더 악화시켜
정치 논리로 대증요법만 쓴 탓
대기업은 하도급업체 배려하고 노조는 기득권 양보해야
 
양극화로 세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성난 민심으로 인해 각국의 정치 구도가 뒤바뀌고, 100년 이상 유지되어온 세계경제 질서마저 흔들리고 있다. 우리도 더하면 더했지 예외가 아니다. 이제 양극화를 외면하고는 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되었으니 거의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긴 세월, 각국이 다각적으로 노력했지만 완화는커녕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니 어느 정도 격차는 불가피하지만 각국의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첫 시도는 사회주의 체제 도입이다.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생산과 분배를 공동화하면 양극화가 해소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동기부여 없는 하향 평준화 경제가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종주국인 소련부터 무너졌다. 북한·미얀마·쿠바도 절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덕택에 경제가 잘 돌아가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라들의 양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5년 중국의 지니계수는 0.48로 우리나라 0.30은 물론 OECD 평균 0.32보다도 훨씬 높다. 결국 사회주의 체제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서방국가들은 재정(財政)을 통한 분배를 추진했다. 정부 지출을 늘려 일자리를 확충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했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착안해 오랫동안 잘 유지했다. 그런데 정치가 포퓰리즘에 빠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재원 문제로 제동이 걸렸다. 초기에는 세금으로 충당했지만 갈수록 커지는 복지 비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이다. 1970년대까지 최고의 복지국가를 만들었지만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율은 58%, 소득세율은 최고 85%까지 올렸다. 이렇게 높은 세금을 버틸 수 있는 경제는 없다. 결국 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부터 무너지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이후 세율 인하, 부유세와 상속세 폐지, 기초연금 폐지 등 과감한 재정 개혁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늘어나는 복지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자 정치인들은 빚을 내기 시작했다. 빚에 의존하는 방식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지만 당장의 달콤한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지난 수년간 남유럽 사태에서 보듯이 참담했다. 경제가 무너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저소득자의 몫이다.

빚을 내기 어려워지자 창안한 것이 양적 완화다. 저금리로 대출이 늘어나면 투자가 확대돼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망상이었다. 풀린 돈이 실물 투자보다 자산 시장에 집중 유입돼 주식·채권·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결국 고소득 자산가들만 혜택을 보며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이상에서 보듯이 각국이 그동안 취해온 양극화 시책들은 큰 틀에서 대부분 실패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따라 복지를 확대하고 양적 완화를 하다 보니 국가 부채가 쌓여갔다. 금융 부문을 제외하고 가계·기업·정부 부채 모두를 합치면 GDP의 240%로 중국·미국의 255%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직 정부 부채는 여유가 있다지만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보 좌파 정책을 펴면 도움이 될까? 과거 경험을 보면 오히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배 구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다가 보수 정권 시절에 추세가 꺾이곤 했다. 미국 역시 공화당보다 민주당 정부 시절 즉 레이건보다 클린턴·부시보다 오바마 시절에 분배 지표가 더 악화됐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에 따른 해법이 양극화 해소에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양극화는 사실 경제 문제다. 그동안 정치권이 주도하면서 이념 문제로 변질되고, 병의 원인 치유보다는 증상 완화에만 몰두하다 보니 부작용이 커져갔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장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요즘 흐지부지되고 있는 동반 성장, 상생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다. 대기업은 부품 중소기업을 '갑을'이 아닌 '동반자' 관계로 인식하고 단가 인하, 기술 탈취 등 불공정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계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노조의 행복은 부품 중소기업의 눈물이다. 대기업이 파업하고 인건비 올리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하도급 업체에 전가된다. 높은 인건비 부담으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니 청년 일자리도 줄어든다. 노동계의 양보 없이 양극화는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도 대기업만 때릴 것이 아니라 노동계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대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3/2017072302195.html
  • facebook
  • twitter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