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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정권의 '정책교환' 패러독스김상협 | 2017.06.02 | N0.250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거나 부조리한 것 같지만 그 너머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걸 패러독스라 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건 그러한 역설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가장 진보적 대통령을 표방했던 그가 핵심 지지층인 노동자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를 강행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모순이고 부조리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래도 이를 계속하게 만든 건 국익이라는 `진실`을 직면한 대통령의 용기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선후보 시절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자신을 찾아온 미국 고위 인사에게 "그건 선거 때 얘기니 걱정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임기 초반 미국이 요청한 파병을 고심 끝에 들어줬고 임기 말에는 한미 FTA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의 표현대로 그게 한국 경제가 살길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보수진영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그는 한미 FTA를 거론조차 할 수 있었을까? 효순·미선 양의 비극적 사고 등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되었던 그때 보수 쪽에서 한미 FTA를 국가적 의제로 제기했더라면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집단적 저항에 부딪혀 이내 좌초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파에서 하고 싶었던 정책을 좌파에서 추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이니 설마 우리 노동자를 벼랑에 몰아넣겠어?`라는 우군의 심리가 야당의 협조와 맞물리며 한미 FTA를 살린 동력이 되었다. 이를 완결한 것은 보수진영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는데 당초의 우려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듭 시비를 걸 만큼 한국에 상당히 유리한 쪽으로 귀결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에서 본격화하고는 싶었지만 산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자제했던 의제를 임기 초반부터 꺼내 들었는데 바로 저탄소 녹색성장이었다. 특히 임기 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법을 제정할 당시 일부 경제단체에서는 실무책임자를 겨냥해 중국도 안 하는 걸 하려드는 `빨갱이`로 몰기도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신(新)기후체제가 들어설 테니 국익 차원에서 소신껏 일하라고 주문했다. 

비록 반발은 많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설마 산업계를 벼랑에 몰아넣겠어?`라는 우군의 심리와 야당의 협조 덕분에 결국 이 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2015년 파리에서는 기후협정이 체결되었고, 중국은 2017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전면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진보정권이 무역자유화라는 보수진영의 의제를, 보수정권이 기후변화라는 진보진영의 의제를 국정의 핵심으로 끌고 간 `정책교환`의 패러독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3의 길을 주창한 앤서니 기든스는 `급진중도(radical center)`라는 형용모순어법으로 이를 설명한다. 좌파와 우파는 실상에 있어서는 정책이 수렴하고 있으며 국가이익과 시민이익을 위해 누가 더 변화를 신속히 잘 이끌어 가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버락 오바마를 그 성공사례로 손꼽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보와 보수 진영 공히 자기 자신만이 올바르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서로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진보는 보수의 액션 플랜과 실행력을, 보수는 진보의 로드맵과 숙의과정을 충전하면 어떨까. 선거는 편을 가르는 일이지만 국정은 편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한 통합의 정치가 실천되기를 그래서 주목한다. 진보진영이 기업가정신을 키우고 보수진영이 사회안전망을 다지는 데 앞장서 상대 진영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성공의 패러독스를 볼 수는 없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정파적 모순을 넘어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향상과 발전이라는 진실 아니겠는가.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36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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