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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소통 사례김황식 | 2017.03.08 | N0.214

법관으로 재직할 때 겪은 일입니다. 어떤 형사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하여 재판장인 저와 주심판사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저의 의견은 무죄였고 주심판사의 의견은 유죄였습니다. 이처럼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재판부 구성원인 세 사람이 표결을 하여 결국 2대1로 결론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되도록 3인 일치 의견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저는 각자 더 생각해보고 일주일 후에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도 의견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죄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유죄로 하는 양보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죄인 피고인을 무죄로 잘못 판단하는 것보다는 무죄인 피고인을 유죄로 잘못 판단하는 것이 훨씬 큰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無辜)한 죄인을 벌하지 말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률 격언이 제 의견을 고집해야 할 근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주심판사에게 `그러면 내가 판결을 한번 써 보겠으니 그것을 읽어보고 나서 합의를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잘 정리된 판결문이 더 깊은 생각의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서. 제가 쓴 판결을 읽은 주심판사는 부장님의 의견이 옳다며 양보(?)하여 결국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심판사가 저의 의견에 정말로 승복하였는지 아니면 예의상 양보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후배 법관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제 의견을 관철시킨 사례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도 자기주장을 당당히 밝히며 상당히 저항(?)했던 후배 법관과는 더욱 친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돈독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총리로 재직할 때 겪은 일입니다. 18대 국회에서 논의한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 수사개시권 명문화가 문제로 되자, 검찰과 경찰이 이를 둘러싸고 크게 대립하였습니다. 양 기관에서 항의 집회를 열거나 항의 사표를 제출하는 일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하여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고 일부를 대통령령에 위임해버림으로써 부득이 총리실이 나서서 이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총리실은 검찰과 경찰 간 서면 협의, 3박4일간의 실무 조정회의, 총리실장 주재 고위급 조정회의 등을 통해 양 기관의 의견 차이를 좁혔지만 일부 미해결 쟁점에 대해서는 총리실이 법 개정 취지, 인권보호, 수사절차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조정안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내용의 대통령령이 만들어지더라도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며 걱정하였지만, 저는 법과 원칙에 맞는 안을 만들면 어떤 저항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양 기관이 부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관리할 것을 당부하고 필요한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습니다. 최종안을 발표하기 며칠 전에는 하급 경찰관 및 검사 각각 10명씩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총리실로 불러 제가 그들과 직접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파격이라는 내부 지적이 있었으나 내 뜻대로 강행하였습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에 나서기 쉬운 하급이나 젊은 공직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통은 양 조직 전체와 소통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수긍할 만한 지적이나 의견에 대하여는 공감해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지적하여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조정안이 발표된 뒤 별다른 소요는 없었습니다. 어느 쪽에 편향되지 않은 원칙에 따른 일처리가 이유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성 있는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은 갈등을 막아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일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153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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