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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전환, 혁신하는 대학만이 살아남는다김도연 | 2023.05.22 | N0.15
디지털 문명으로 급속 전환, 교육 틀 새로 짤 때
학과중심 대학체제, 교육방법 총체적 혁신 필요
대학이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자율성 강화해야


혁명이란 사회관습이나 제도 그리고 생활방식 등이 단숨에 바뀌는 상황을 일컫는다. 왕조(王朝)가 무너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 된 것은 정치혁명의 결과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지난 200여 년간 인류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기계와 전기기술 등의 발전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데, 최근의 또 다른 혁명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지난 5년만 돌아보아도 블록체인에서 메타버스로 그리고 챗GPT로 진화했다. 인공지능(AI)이 초래할 사회적 폐해가 상당할 것이니 잠시 개발을 멈추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며 세상은 더욱 빨리 바뀌어 갈 것이다.

사실 스마트폰도 우리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 겨우 10여 년 전이었다. 스마트폰의 폐해는 지금도 얼마나 많이 언급되고 있나? 그러나 이제는 어느 누구도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우리가 보고 있는 스마트폰의 2차원 영상은 3차원 메타버스로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챗GPT에 양자(Quantum)컴퓨팅이 더해지면 그 능력은 상상 밖일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10년이 지나면 우리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처럼 그간의 산업문명은 디지털문명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이는 마치 석기시대가 청동기시대로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의 문명 전환은 그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기에, 오늘의 젊은이들은 틀림없이 지금과는 완연히 다른 디지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당연히 그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특히 대학 혁신은 화급한 일이다. 머뭇거리면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만 계속 다루고 있는 쓸모없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산업 시대의 최고 가치는 균일한 제품을 효율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은 전공별로 잘게 나뉘어 각 산업에 쓰일 유용한 부품을 생산하듯 사람을 키웠다. 규격화된 인재를 양성하는 몰개성적 교육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개인의 특성이 중요하며 다양성이 가치를 지니는 시대다. 대학은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문명 전환을 이미 경험했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 인식은 아직 미흡한 듯싶다. 대면교육을 비대면으로 바꾸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학과 중심 대학 체제 및 교육 방법 등에서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진화론으로 생물학을 넘어 현대 사상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 찰스 다윈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물 종(種)은 육체적으로 강했거나 혹은 두뇌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에 잘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대학이 급속한 문명 전환에 대처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내부 구성원들의 혁신 의지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자율성을 대학이 갖는 것이다.

우리 대학들엔 법령을 비롯해 조례, 규칙, 지침과 교육부의 광범위한 규제가 족쇄처럼 드리워 있다. 아주 작은 일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대전환에 대처해 살아남을 대학은 매우 드물 듯싶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나 지난 15년간의 등록금 동결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다. 뜨거워지는 여름, 해변에서 바다로 옮겨가야 살 수 있는 거북이들에게 획일적으로 하루에 10m씩만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상황과 흡사하다.

특히, 우리 대학생 4명 중 3명이 다니고 있는 사립대학들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사학의 존재 가치는 개성 있는 교육 목표와 창조적 교육 체제 및 방식으로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며, 이는 디지털 문명사회에 더욱 필요한 시스템이다. 탈법과 비리가 있다면 다른 조직보다 더욱 엄중한 처벌을 하는 것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모든 사학을 한 틀에 묶어 규제하는 일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립대학의 법인 이사 선임은 교육부 승인을 받아야 되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는 전혀 없는 규제다. 사기업에도 공공성은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인데, 이를 이유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회사의 이사 선임을 정부가 간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하튼 총학장 임기부터 직인(職印) 크기까지 온갖 규제가 대학을 옥죄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가 보장하고 있는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대학들은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을 더욱 잃을 것이다.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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