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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의 저항, 아쉬운 행정구역 개편 실패이명박 | 2018.03.14 | N0.167
기득권의 저항, 아쉬운 행정구역 개편 실패

“현재의 기초단위 행정구역은 100여 년 전 갑오경장 때 개혁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완전한 농업시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와서도 그때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2008년 9월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는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디지털 시대와는 거리가 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행정체제는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일례로 인구가 2만여 명인 군(郡)과 100만 명이 넘는 시(市)가 같은 기초자치단체로 분류되어 있다. 그로 인해 행정 파행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간의 인구 차이는 경쟁력의 차이로 나타나 지역 불균형 심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인구 100만 명 수준의 권역별로 기초단위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역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행정구역 개편은 기초자치단체 간의 불필요한 중복 투자도 막아 행정적·경제적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의 선거구제, 지방 공무원들의 자리, 지방자치단체 간 주도권 다툼, 주민 동의 등 수많은 문제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전면 도입을 앞둔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도(道)를 해체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도농 통합으로 끝났다. 이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005년, 한나라당의 제안으로 지방행정체계개편특위가 구성되어 16개 시도를 폐지하고, 230개 기초단체를 70여 개로 광역화하자는 안을 냈으나 무산됐다.

1998년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여수시로 통합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행정구역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는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도 행정구역 개편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2008년 9월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에서 나와 만나 지방행정체계 개편을 조기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되어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했다.

2009년 4월 28일,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보고가 있었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통합 사례를 창출해 지방 경쟁력을 높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얼마나 저항이 생길까 걱정이지만, 이번 하반기에 23개 기초자치단체를 9개 정도로 묶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 장관은 유능한 행정학자이면서 국회의원 경험도 갖고 있어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노련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으로서 우리 정부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당·정·청,여야 정치권과의 관계를 무난하게 잘 관리했다. 이 장관은 시군구 간 자율 통합을 통해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보였다.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는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한 번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9년 8월 26일, 우리 정부는 자율적으로 통합하는 시군구에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지원 계획안을 확정, 발표했다. 시군구가 자율적 통합을 이룰 경우 2조 866억 원을 지방교부세로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안이 발표되자 18개 권역 48개 기초단체가 통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이해가 상충되면서 행정구역 개편은 난관에 봉착했다. 당초 행정구역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던 민주당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고, 여당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방자치단체와 국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독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결국 2009년 11월, 통합 의사를 밝힌 마산·창원·진해와 청주·청원 그리고 성남·광주·하남 세 개 권역 여덟 개 기초단체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일종의 모델케이스로 시범적으로 실시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난항을 겪으며, 지방선거 이전 통합된 지방자치단체는 마산·창원·진해 한 개 권역에 불과했다. 청주·청원은 2012년에 가서야 통합을 했고, 성남·광주·하남 권역은 성남권 내부의 반대로 인해 결국 통합에 실패했다.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한 결과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고비용, 저효율 해소’라는 통합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 행정구역 개편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공공기관 선진화 노력과 한계

공공기관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중단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45개 공공기관이 신설됐다. 그로 인해 인력 규모는 약 6만 7,000명이 증가했고, 예산 규모도 약 102조 원이 늘었다. 조직은 비대해진 반면 효율은 떨어졌다. 조세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같은 기간 35개 대형 공공기관의 1인당 인건비는 연평균 6.6퍼센트 증가한 반면, 1인당 부가가치는 연평균 1.8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인건비 과다 지급, 복지기금 등의 부정적 집행 등 비효율적 조직운영도 문제였다. 이러한 비효율적 운영은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유발시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공공기관의 경우 주인은 국민이다. 그러나 감시는 정부가, 경영은 공공기관이 하는 다단계의 ‘주인-대리인(principal-agency)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단임제 특성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의 수장도 바뀌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책임의식이 결여돼 도덕적 해이가 발생되기 쉽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에 반하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또한 공공기관은 법률에 의거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해당 분야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기술 혁신이나 원가절감 등 생산성 향상 노력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취임 초부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 개혁방안을 준비했다. 공공기관 선진화를 통해 공공기관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위축된 시장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이었다. 2008년 6월 18일,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기관 선진화 의지를 밝힌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였다.

우리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선진화정책은 작은 정부 큰 시장 지향, 국민 편익의 증대,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기관별 특성에 맞는 방안 수립 및 투명한 추진이라는 네 가지 원칙하에 추진됐다. 특히 공공 부문 효율화를 위한 민영화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비대해진 공공 부문에 대한 구조 개편도 요구됐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국유화된 금융기관의 민간 환원을 통해 금융시장 활성화를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한국문화진흥(뉴서울CC), 한국자산신탁 등 자회사 10개와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7개 그리고 대한주택보증과 88관광개발(88골프장) 등 19개 공공기관을 민영화하기로 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등 5개 공공기관 지분의 일부 매각을 추진했다.

또한 1993년부터 통합 논의가 이루어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비롯한 7개 유형 36개 기관의 통폐합 및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하고, 이외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경쟁 도입과 기능 조정 등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조직 정원이 축소되고, 방만한 경영을 바로 잡기 위한 임금 동결과 복지 축소도 단행됐다. 특히 공기업과 노조 간의 노사 협약을 공개하여 기획재정부 경제전망(REO)에 기재하는 등의 성과도 일구어냈다.

그러나 2012년 12월 말까지 19개 민영화 대상 기관 중 7개 기관을 민영화하고, 지분매각 대상 5개 기관 중 3개 기관의 지분을 매각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공공 부문 선진화 작업이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한 데는 2008년 9월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급박했던 상황에서 금융 공기업의 선진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영화를 추진하다보니 제값을 내고 공공기관을 인수할 기업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고,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일자리의 급격한 축소를 막기 위해 고용을 유지한 상태에서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아울러 2008년 중반에 발생한 광우병 사태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광우병 사태가 100일 이상 계속되면서 쟁점이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으로 점점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물값이 100배 오른다”는 식의 민영화 괴담이 퍼졌다. 왜곡된 정보에 의해 공공기관 선진화의 추동력이 약화되면서 공기업 선진화 작업도 차질을 빚었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이 지연됐으며, 가스 및 KTX 경쟁 체제 도입 등의 개혁 작업이 차질을 빚었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공공기관 개혁의 취지가 왜곡되고 추동력이 약해진 점과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집행에 어려움이 있었던 점은 공공 부문 선진화에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당시 나는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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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이충웅 2018-03-14 06:23:40
  • 이충웅 2018-03-15 08:28:04 슬픈 기다림/ 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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